무서웠던 아버지 원망도 했는데…지금은 큰 그리움으로 다가와
앞마당에 '귀염둥이'가 둘 살고 있다. 하나는 목에 검은 점 목도리를 두르고 온몸이 하얀 강아지, 또 하나는 나만 지나가면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르는 고양이다.
귀여운 재롱둥이들을 보며 혼자 웃다가 위를 쳐다보니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원 앞 창문이 보인다. 마음에 아련함이 묻어난다. 자식은 부모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과 부모는 무엇일까.
아버지는 내 기억에 언제나 열정적으로 일만 하시는 분이셨다. 오야지(리더)였던 아버지는 데모도(일꾼)를 모으기 위해 오전 5시면 어김없이 "경용아" 나를 깨워 심부름을 시키셨다. 어쩐 셈인지 나만 불러댔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 그야말로 내가 전화기였다.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매일 같이 새벽 일찍 일가시고 밤늦게 돌아오셨기에 아버지가 내 얼굴을 친근히 바라봐준 기억이 없다. 게다가 솜씨까지 좋아 먼 타지역 지방에 가실 경우는 몇 달 만에 집에 오시기도 했다. 아마 전국을 다니신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던 모습이 아버지의 고난과 희생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잠결에 들은 쩌렁쩌렁한 목소리, 무덤덤한 모습으로 말없이 일만 하시던 모습, 가끔 집에 오셔서는 꾸중하시던 모습, 그 모습들이 그때는 그냥 무섭기만 했다. 언제나 오시나 몇 날을 기다리다 마침내 오시면 새어머니 말만 듣고 꾸중하실 때면 정말 보기도 싫었다. 보고 싶던 마음이 원망과 눈물로 채워진 적도 많았다. 그랬기에 아버지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걱정과 애정을 안고 있었는지를 몰랐다.
대목수로 목수 명장이었던 아버지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였으니 아들인 내가 목수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꿈은 아버지의 바람과 달랐다. 중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꿈은 무시당했고, 아버지가 바라던 목공을 배웠다. 그때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결정은 너무나 서툴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어려서 따뜻하게 안기고 싶었던 아버지, 하지만 무서운 기억만 남겨주고 간 아버지, 그래서 언제나 망설여지던 아버지, 산소에 오르는 길에 생각의 늪에 빠진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겨본 그런 기억이 없다. 그래서 잊고 살고, 그냥 묻어두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큰 그리움인 줄을 그땐 몰랐다. 널따란 등에 업혀 가서 국밥을 먹은 기억이 이제 난다. 처음 먹어보는 짜장면에 홀딱 취해 온 얼굴에 짜장을 묻힌 어린 아들을 쓱쓱 닦아 주시던 커다란 손바닥이 이제 기억에 떠 오른다. 유일하게 기억되는 아버지의 따뜻함이다.
어머니를 떠나셨던 이유를 묻고 싶었는데, 어미를 생이별한 어린 자식의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이제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지 않다. 새어머니가 차려준 찬밥을 먹어야 했던 그 순간의 원망도, 이제는 희미한 옛일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삶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을 테니까. 어린 자식을 감싸줄 여유가 없었을 테지.
하늘을 바라보니 지난 세월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연민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내 그리움에는 해답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리움 속에는 숨겨진 사랑은 알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리움은 내 삶의 동반자였다. 이것이 바로 왜 나는 더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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