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시인
자기 것만 챙기기에 급급한 경쟁사회에서 내 것보다는 자식의 것을 더 생각하고 챙기는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소금이요 빛이 아닐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니 허허롭기 그지없다. 세상에 오직 어머니 한 분만이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계실 뿐이다. 어머니만이 영원한 내 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의 마음은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구치는 사랑의 샘물이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존재다.
어머니가 고기를 싫어한다고 하던 말을 순진하게 믿고 어머니 몫을 스스럼없이 먹었던 부끄러운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에서 설렁탕 국물을 자식의 뚝배기 그릇에 주인 몰래 쏟아붓는 어머니의 마음. 연로한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서러움 때문에 흐르는 눈물 남몰래 닦는 아들의 모습은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이 시대 못난 자식들의 궁색한 변명일는지도 모른다. 어버이날 어머니 모시고 평소 좋아하시는 중국 요리를 실컷 드시게 만찬을 갖고 나서야 부끄러운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
어머니 집과 내가 사는 집 사이에는 나지막한 동산이 하나 가로놓여 있다. 학산을 넘어 어머니 집에 자주 다니러 간다. 처음에는 그냥 어머니 집에 가려고 학산에 올랐다. 한 번 두 번 계속 산에 가다가 보니 도저히 뺄 수 없을 것 같았던 뱃살이 빠지고 몸이 건강해졌다. 학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한 이후 내 삶이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학산은 여러모로 나를 다르게 살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산이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건강도 되찾고 시도 다시 열심히 쓰게 만든 산이 바로 내가 사는 동네 학산이다.
어머니 집에 들어서면 낡은 빗자루가 대문 옆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다. 빗자루는 바닥을 얼마나 쓸어댔는지 끝이 다 닳았다. 몸이 너덜너덜해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기꺼이 온몸 바쳐 희생하는 빗자루는 어머니를 빼닮았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쉬지않고 일하는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마법의 빗자루다. 행여나 자식이 배앓이라도 할라치면 따스한 손으로 아픈 배 쓸어주시는 어머니의 약손은 순식간에 씻은 듯 배앓이를 낫게 하는 요술을 부리기도 한다.
이제는 서 있기조차 힘들어 땅 짚고 앙버티며 뭉툭한 손으로 저녁상 차리시는 어머니. 이도 없이 잇몸으로 오물오물 고기 한 점 씹어 삼키는 울 엄마. 메마른 입술 부르튼 세월은 분홍지우개로 문지르면 없어질까? 생기가 사라진 어머니의 입술을 촉촉하고 기름지게 해드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할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머니는 그대로다. 골이 깊어진 주름살에 자식 사랑하는 마음결 무늬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 보인다. 쭈글쭈글해진 어머니 얼굴을 가슴 뭉클하게 힘껏 안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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