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인 제우스·헤라클레스 후예라 주장
사슴뿔 금관으로 이어지는 신라·켈트족·흉노
동서양 문화접변 이룬 시기 황금 유물 쏟아져
2년 전 2022년 2월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좀처럼 종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문화 교차로다. 그 주역은 스키타이였다. 우크라이나 기반의 스키타이가 유라시아 대초원을 오가며 남긴 문화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스키타이, 사슴 황금 장식 활용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가보자. 아름다운 드네프르 강이 남북으로 흐르며 시가지를 동서로 가른다. 시내 중심 라브라 보물관에 스키타이가 남긴 진귀한 유물 가운데 황금 관모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B.C4-5세기 스키타이 귀족 무덤에서 출토한 황금 관모 장식은 경주의 5세기 신라 금관과는 연대나 생김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주목할 부분은 스키타이 황금 관모 장식의 소재다. 스키타이는 고구려처럼 고깔형 모자를 쓰고, 여기에 커다란 뿔을 가진 황금 사슴 장식을 붙였다. 신라 금관의 중심 모티프가 사슴뿔 세움 장식 2개 아닌가.
◆신라와 선비족 사슴뿔 금관, 마한, 사슴뿔관
사슴뿔 장식은 신라만이 아니다. 동시대 전라남도 마한 영역에서 출토되는 무덤유물을 통해 전남대 박물관이 복원한 제사장 추정 모습을 보자. 사슴뿔 관을 머리에 썼다. 중국의 북경 국가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5세기 황금유물이 눈길을 끈다. 큼직한 사슴뿔 2개를 단 대형 사슴 머리 황금 관모 장식. 몽골초원과 황하 북부의 중원을 장악한 민족, 선비족이 세운 나라 북위(386년-534년) 유물로 내몽골 초원에서 출토됐다.
특기할 것은 스키타이나 선비족 사슴 형태 황금 관모 장식은 100% 여성용이다. 남성 무덤에는 무기를 껴묻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191호 신라 금관 역시 황남대총 쌍분 가운데 왕비 추정 북쪽 무덤에서 나왔다.
◆스키타이가 남긴 알타이 사슴뿔관
몽골초원 북쪽 시베리아 알타이 파지리크에서 출토한 B.C4세기 카펫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쥬 박물관에서 취재했다. 상반신은 사람이요 하반신은 말, 즉 그리스 신화 켄타우로스 형상이다. 등에 날개를 달아 페가수스도 연상시킨다. 상상의 신적 존재다.
B.C5세기 중반 헤로도토스는 『역사(Histories Apodexis), 도서출판 숲 천병희 역, 2009년)』 4장에서 스키타이인들은 스스로 제우스 혹은 헤라클레스의 후예라고 여기며 전쟁의 신 아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신을 숭배한다고 적는다. 무덤 주인이 스키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다. 무덤 주인 미라도 출토됐는데, 백인이다.
중국은 월지(이란계 백인)족이라지만, 높은 마차(高車) 등 출토 유물은 헤로도토스의 스키타이 묘사와 맞아떨어진다. 러시아의 스키타이 주장에 힘이 실린다.
◆오스트리아 켈트족 신관, 덴마크의 사슴뿔관
이제 흑해에서 서쪽으로 무대를 옮겨보자. 스키타이는 서쪽으로 헝가리 초원까지 교류했다.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은 B.C10세기 이후 켈트족의 무대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면 켈트족 신관 드루이드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 놨다. 사슴뿔 관을 썼다. 무덤 등지에서 출토된 실물 사슴 뼈를 기반으로 그린 거다. 그림이라 좀 아쉽다.
결정적인 유물을 찾아 유라시아 대륙의 맨 서북쪽 끝 덴마크로 가보자. 코펜하겐 국립박물관 선사 전시실에서 커다란 청동 콜드론(Cauldron, 금속 솥)이 탐방객을 부른다. 예사롭지 않다. 가야의 김해부터 유럽까지 유라시아 콜드론은 청동이나 철제인데 은제다. 더욱이 현란한 부조 장식이 표면을 뒤덮는다. 장식의 핵심은 신관. 머리에 큼직한 사슴뿔 관을 쓰고 앉았다.
손은 뱀을 잡은 모습이다. 뱀은 선사시대부터 지중해 주변에서 지하세계, 자연을 상징하는 환유(換喩)다. 즉 자연과 통하는 신관이라는 의미다. 1891년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 최북단 군데스트룹(Gundestrup)에서 출토된 은제 콜드론은 B.C2-B.C1세기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살지 않는 코끼리도 묘사됐다. 박물관측은 타지역에서 온 교역품이나 전리품으로 본다. 이 박물관에는 뿔관을 쓴 여신관 황금조각도 전시돼 뿔과 종교의 연관성을 들려준다.
◆스키타이... 황금, 하늘이 준 보배
헤로도토스는 『역사』 4장에서 스키타이가 황금을 소중히 여겨, 황금 지키는 자에게 말을 타고 하루 달릴 수 있는 거리의 땅을 하사한다고 적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 쟁기와 도끼, 멍에로 농사짓거나 기마 전투한다고도 기록한다. 황금과 하늘 연계 문화다. 상트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쥬 박물관으로 가보자. 황금 보물실은 별도 요금을 내고 가이드 통제 아래 탐방 가능하다.
구소련시절 몽골초원과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출토한 스키타이와 훈(흉노)의 황금유물이 눈부시다. 필자가 유라시아 각지에서 취재한 황금 문화 최고봉은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무게 110kg짜리 투탕카몬 황금관과 황금 마스크다. 그 다음은 에르미타쥬 보물관 소장 스키타이와 흉노의 황금유물이다.
20여 년 넘게 유라시아 역사를 취재하면서 촬영금지 구역 내 유일하게 촬영하지 못한 유물이라 아쉬움이 크다. 스키타이가 흉노와 접촉해 문화접변(文化接變, Acculturation)을 이룬 시점은 B.C4-B.C3세기로 추정된다.
◆훈(흉노), 신라... 황금, 하늘이 준 보배
흉노가 중국 사서에 등장한 것은 한나라 무제 때 B.C1세기다. 후한 시대 1세기 말 역사가 반표, 아들 반고, 딸 반소가 대를 이어 완성한 『한서(漢書, 명문당 2017년, 진기환 역, 15권으로 번역)』를 펴보자. 전체 권 100의 분량 가운데 권 68이 「곽광김일제전」이다. 곽광과 김일제는 훗날 사돈이 된 한 무제시기 충신으로 무제릉에 배장됐다.
명문당 번역서 6권의 권 68 원문을 보면 "표기장군 곽거병이 군사를 거느리고 흉노의 오른쪽 땅을 공격하여 흉노 휴저왕(김일제의 아버지)이 제천(祭天)하는 곳에서 금인(金人, 금으로 만든 신상)을 노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어 반고가 권 68 맨 마지막에 "휴저왕이 금인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해 김씨성을 하사했다"고 적는다. 김씨 성의 탄생 비화다. 흉노의 제천의식과 황금 숭배가 스키타이와 일맥상통한다.
신라도 마찬가지.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를 보자. "밤중에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궤짝을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으니... 금빛 궤짝에서 나와 성을 김씨라 부르고" 신라 김씨 왕조의 조상 김알지 탄생설화다.
김씨 왕조가 마립간의 '칸'이라는 기마민족 지도자 호칭을 쓰던 5세기 경주의 대형고분에서 황금유물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거다.
◆스키타이 묘사 전투 잔인성, 적군 머리가죽 옷만들어 입어
헤로도토스의 『역사』 4장 스키타이에 대한 묘사를 마저 살펴보자. 적의 피를 마신다. 적을 베지 못하면 축제에서 술 마실 권리가 없다. 적의 손 가죽을 벗겨 화살통 뚜껑, 머리 가죽을 벗겨 손수건으로 쓴다. 많이 모이면, 옷을 지어 입는다. 적의 두개골은 눈 위에서부터 잘라 술잔으로 사용... B.C6세기 지구상 최대 제국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도 스키타이 정벌에 실패한다. 헤로도토스의 묘사에서 왜 다리우스 대제가 원정에 실패했을지 이유가 읽힌다.
스키타이는 적의 눈을 멀게 해 노예로 삼았다. 그런데 전쟁을 위해 고국을 26년 비운 사이 눈먼 노예들과 스키타이 여인들이 부부가 돼, 새로운 스키타이 부족이 생겨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에서도 20년 트로이 전쟁 동안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20년 만에 귀향한 남편은 죽음. 왕비 클리템네스트라와 정부의 손에 죽은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상징적이다.
전쟁 승리가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1945년 2월 대한민국 독립을 확정했던 얄타회담 장소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의 얄타. 그 얄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국민 행복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길 나지막이 읊조린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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