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1대 국회, 차량 급발진 사고 원인 입증 개인에게 계속 맡길 텐가

입력 2024-04-30 05:00:00

21대 국회 여야의 마지막 힘겨루기 와중에 민생 법안 중 하나인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일명 '도현이법'이다. 2022년 강릉에서 할머니가 몰던 SUV 차량의 급발진으로 숨진 12세 소년 이도현 군의 이름에서 왔다. 차량 급발진 원인 규명을 차량 제조사에 맡기는 법안이다.

우리나라 차량 등록 대수는 2천600만 대가 넘는다. 국민 1명당 0.5대에 이른다. 높은 자동차 보급률에도 차량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은 미지의 영역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내놓은 2010~2022년 차량 급발진 사고 추정 수치는 766건. 한 달에 5건씩 발생한다. 이 정도 빈도라면 원인을 밝히기 위해 차량 제조사와 국가가 함께 나서는 것이 합리적이다.

급발진 사고는 제동등이 켜져 있어도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시속 150㎞가 넘는 속도로 튀어 나가는 사고다. 게다가 아무리 제어하려 해도 말을 듣지 않기에 운전자들은 패닉에 빠진다. 충돌이나 전복 외에 멈추지도 않는다. 언제 오발될지 알 수 없는 총포나 다름없다. 급발진 차량 인근에 있다 참변을 당하는 이들도 있다. 모두에게 트라우마다.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제조업자의 손해배상책임은 손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제조물책임법 탓이다. 제조업자가 끝까지 결함이 없다고 맞서기만 해도 법률적으로는 책임이 없게 된다. 운전자가 사고 원인 분석용으로 제출한 블랙박스 영상으로는 불충분하다. 정부가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를 차량 제조사에 권고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기도 했다.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배경이다.

차량 소유주인 소비자가 전문적인 영역에 가까운 차량 결함을 입증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다수의 소비자가 약자다. 21대 국회가 민생을 우선에 둔다면 처리에 속도를 붙일 법안은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이다. 이런 방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해야 할 민생 법안이다. 그러나 상임위 문턱도 못 넘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