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출구 없는 의정 갈등,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야

입력 2024-05-01 06:30:00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과 교수.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과 교수.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어느새 시작한 지 두 달을 훌쩍 지났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대화와 타협은 요원하고, 서로에 대한 감정적인 소모전과 지리멸렬한 줄다리기만이 지속될 뿐이다. 그러한 가운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

양측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각자가 주장하는 논거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 여러 내용들을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주장과 재반박, 그리고 재반박의 주장들이 끝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의료와 관계된 모두가 불신과 실망의 늪에 빠진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을 믿지 못할 것이고,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환자들도 의사들에 대해 실망했을 것이고, 의사들도 이번 사태를 겪으며 일반 사람들의 의사에 대한 냉정하고 냉소적인 시선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신뢰의 상실은 치명적인 것이다. 필수의료과 의사들은 일은 힘들어도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자긍심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독선적인 정책으로 필수의료과를 지원할 수많은 전공의 선생님들이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올해 필수의료과를 지원할 전공의 선생님들 대다수가 다른 과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필수의료활성화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수의료과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도 필수의료활성화를 목표로 정책을 내놓는 것인데, 반작용만 큰 이유를 곱씹어야 할 것이다.

의대정원 문제만 국한해서 살펴보면 이는 현장을 무시한 일방적인 정책결정이며, 이렇게 늘어난 의사들은 필수과보다는 피부미용으로 진입할 것이 자명하고, 그로 인한 의료비 지출 증가도 필연적이다. 의사단체의 주장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필수의료과를 지원할 전공의들의 의견만이라도 청취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2천명, 1천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올해는 의사과학자 및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들에 대한 정원으로 국한해서 확대한 다음에, 시기를 두고 의협과 합의하여 의대 정원을 논의하기를 촉구한다.

의협도 투쟁 일변도의 방향이 아니라, 정부와 깊이 있는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원 동결이 아니면 패배고 실패라는 생각을 버리고, 의사과학자 및 공공의료전담의사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임하기를 바란다.

이번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일개 의사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환자를 내팽개치고, 떠난 의사를 용서할 수 없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전공의, 의대생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떠나 있는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야기될 최악의 문제를 막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의사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에게만은 거두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 친구들이 향후 5~10년 뒤 여러분들의 주치의와 수술집도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신뢰가 깨진다면 의료계는 암울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소아청소년과는 필수의료과로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보호자들의 감사한 마음으로 지탱되고 있는 과이다. 모든 교수님들이 5~6일에 한번씩 당직에, 밤을 새워 당직을 선 다음 날에도 외래진료 및 병동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신문지상에 쓰여진 1억, 2억의 금액들은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이다.

이 봄이 끝나기 전에 속히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매듭이 풀어져, 의료체계가 정상으로 복귀되기를 기원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소모적인 싸움을 이제는 멈추어야 할 때이다.

이동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