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 혹은 선거용 티셔츠 중에 '4 Years, 0 Wars'라는 구호가 적힌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4년간(2017년 1월~2021년 1월) 재임하는 동안 단 한 건의 새로운 전쟁도 발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트럼프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이 새로 일으킨 전쟁도 없었고. 또한 미국의 적들이 미국의 친구들을 향해 일으킨 전쟁도 없었다. 트럼프 이전 3명의 대통령인 오바마, 부시, 클린턴이 미국을 영원한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트려 버렸다고 비난받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트럼프도 전임자들이 벌인 전쟁을 지속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전쟁을 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트럼프 시대에 전쟁이 없었던 이유는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들의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두려워했다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트럼프는 말을 거칠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겁을 주었다. 핵을 만들고 실험하는 북한에 '불벼락' 위협을 했고, 중국을 노골적으로 '적'(Enemy)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력을 "너무나도 막강하게 만듦으로써 아예 군사력을 쓸 필요가 없게 하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힘에 기반한 외교정책'을 통해 미국에 '협조하는 나라에는 보상을,' 미국에 '대적하는 나라에는 처벌을 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는 시진핑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중,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권의 표적들을 박살 내라는 폭격 명령을 내렸고, 그 사실을 시진핑에게 천연덕스럽게 알려 주었다. 트럼프는 적을 때려눕힐 수 있는 주먹(punch)을 준비해야 하며, 그 주먹을 적에게 노골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자병법과 마키아벨리를 적절하게 섞어 놓은 것이 트럼프 독트린이었고, 어쨌든 트럼프 4년은 상대적으로 평화가 유지되었던 세월이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후 많은 전문가들은 전쟁이 빈발하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바이든을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를 '착한 조 아저씨'(Nice Uncle Joe)라고 보았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허약한' '늙고 몽롱한' 등의 형용사로 바이든을 우려했다. 국제정치 세계에서는 착해서 사랑받고, 허약해서 동정받는 지도자보다 적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지도자가 평화를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바이든의 미국이 트럼프의 미국보다 군사력, 경제력 등 종합 국력 측면에서 전혀 약하지 않다. 스테픈 월트(Stephen Walt) 교수의 말대로 지금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결단력, 의지력의 결핍(resolve gap)'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동맹을 존중하며 적들에게 당당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미국의 적들은 물론 동맹국들도 바이든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니 말도 듣지 않는다.
2022년 2월 하순 푸틴의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 바이든은 "미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미국의 개입을 염려하지 않고 침략전쟁을 개시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영공을 장악한 러시아 전투기들이 비행할 수 없도록 '비행금지 구역'(No Fly Zone)을 설정해 달라는 부탁을 들은 바이든의 백악관 대변인 젠 사키는 "우크라이나의 부탁은 애절하지만 미국은 3차대전에는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은 아무런 공식적인 약속이 없는 이스라엘을 거의 전적으로 지지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바이든은 아랍의 눈치도 보고 미국 내 팔레스타인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이스라엘을 단호하게 지지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중동의 적대국들은 마음 놓고 이스라엘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하마스, 지난 4월 13일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은 바이든이 초래한 국제정치의 격변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를 때릴 수 있게 되었다.
바이든 독트린은 '하지 마세요 독트린'(Don't doctrine)이다. 푸틴에게, 하마스에, 이란에 공격하지 말라고 했고 이스라엘에도 너무 강하게 반격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도 바이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김정은과 시진핑은 바이든의 '하지 마세요 독트린'을 어떻게 볼까?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일까? 전쟁은 승리하는 것보다 사전에 억제(deter)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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