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권동진 수필가의 어머니 고(故) 김춘희 씨

입력 2024-05-09 14:30:00 수정 2024-05-16 18:11:33

엄마가 즐겨 불렀던 '찔레꽃'…내겐 한이 담긴 그리움의 노래

어머니가 말년에 계시던 요양원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아내, 어머니, 필자 권동진 씨. 권동진 씨 제공
어머니가 말년에 계시던 요양원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아내, 어머니, 필자 권동진 씨. 권동진 씨 제공

복잡한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엑스코 광장 분수대 앞에서는 공연이 한창이다. 귀에 익숙한 하모니카 선율에 걸음을 멈추고 슬그머니 간이 의자에 앉았다. 아내를 포함한 관객이 열 명 남짓이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 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순간 마음 한 곳에 갈무리해 두었던 그리움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노래가 연주됐기 때문이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남들이 볼세라 손바닥으로 훔쳐내며 고개를 돌리니 아내도 눈물을 흘리며 속 울음을 울고 있다.

어머니는 2022년 봄 찔레꽃이 한창 필 무렵에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파킨슨성 치매로 고생하며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의 끝자락에서 하루하루 망상은 심해지고 맑은 정신은 더 흐려만 갔다. 파킨슨이라는 질환은 당신의 근육을 깡그리 앗아가고 피골이 상접한 채 앙상한 뼈만 남겨 놓았다. 근육과 관절이 얼음처럼 굳어 침상에 누워만 지냈고 연하 작용도 어려워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만 해도 주말에는 만나서 줄곧 당신의 애창곡을 함께 부를 수 있었는데 코로나는 그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면회 불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당신이 계셨지만 만날 수 없었다. 창 하나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다 돌아서는 마음을 어찌 세치 혀로 표현할까.

요양원 출입문 창 너머에 애절한 당신의 시선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천근의 무게로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얼마나 그러기를 반복했던가. 이 불충을 '코로나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천번 만번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 오지 못한 걸 후회하지만,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의 1남2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곱게 살다가 힘든 시집살이를 견디며 육남매를 반듯하게 키웠다. 외가 동네는 300호가량이 모여 사는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일가 피붙이인 동네의 분위기는 모두가 하나 같이 반듯하고 기품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체감할 수 있었다. 방학이 되면 한달음에 외가에 달려가려던 이유이기도 했다.

어느 집을 방문해도 시집간 누구 아들 누구 할아버지 외손자라며 살갑게 반겨 주었다. 다정다감하신 외할아버지는 풍수지리며 전해오는 구전을 하루 저녁에 세 가지씩 들려주셨다. 이야기 보따리에는 몇 날이 지나도 새로운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나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문학에 대한 꿈을 꾸다 뒤늦은 나이에 전공과 무관하게 몇 권의 수필집을 냈고 글을 쓰는 수필가가 됐다.

외가와 달리 시댁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결혼 직후 아버지는 군대에 가셨고 혹독한 섣달에 아기가 태어났다. 남편이 없는 시집살이는 겨울 칼바람보다 매웠다. 다정다감한 부모님이 계시는 친정집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당신의 병이 깊어질 무렵 어머니는 그토록 그리던 친정집에 들러 며칠 머무르고 싶어 했지만, 외가댁 분위기도 예전과는 달랐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은 모두 지나간 세월에 묻혀 시절 가사가 되어버렸다. 당신이 원하던 찔레꽃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은 어디였을까. 노화로 지병을 앓으셨던 말년에도 따뜻한 정을 붙이지 못한 채 독거와 감옥 같은 요양원에서 고독하게 생을 마쳤으니. 좀 더 일찍 당신의 의중을 헤아려 실천에 옮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의 간절한 마음을 애써 모른 척 그저 함께 부르기만 했던 엄마의 노래 '찔레꽃'은 나에게 한이 담긴 그리움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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