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윤석열 심판에 속절 없이 무너져
◆21, 22대에 잇따라 패하면서 보수층 심각한 딜레마
◆수도권 승리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야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했다. 윤석열 정권 심판론 이슈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간신히 대통령 탄핵과 개헌 저지선(100석)을 지켰다. 나머지 의회 권한을 모두 내줬다. 20대 총선 결과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여권에 던진 타격은 크다.
◆대통령 국정 기조 바뀔 수밖에 없어
위성 정당까지 포함한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등이다. 4년 전 총선에서는 지난 총선 민주당 183석, 미래통합당 103석, 정의당 6석 등이었다.
의석수로만 따지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4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패스트트랙 저지선(180석)이 뚫린 것은 4년 전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회·정치적 의미는 전혀 다르다. 4년 전에는 야당이었다. 책임은 없고 목소리만 높여도 존재감이 있는 게 야당이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까지 덮쳤다. 정권 심판론은 약해졌고, 세계적인 팬데믹 앞에 정부를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정부가 현금을 앞세운 재난 지원금도 여당에게 유리했다. 대패를 했어도 그럴만한 이유를 댈 수 있었다.
지금은 집권 여당이다. 선거에서 정책, 민생 등 이슈를 주도적으로 이끌 다양한 카드가 있는 게 여당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대부분 승리했다. 이번 선거와 같은 큰 격차로 야당에 패한 것은 처음이다.
여소야대로 시작한 윤석열 정부 이후 국회는 여야 간 공방만 벌였다.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고 법을 통과시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강대강 대치가 이어졌다.
22대 국회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통령이 여당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지는 탓에 여당 내 반란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용산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장관 임명조차 야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만큼 윤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국정 기조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몰렸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공조 회복, 원전 생태계 회복, 건전재정 기조 유지 등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반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이종섭 전 호주대사 거취 논란 등 작은 실책을 관리하지 못하면서 큰 비판을 받았다. 결국 소통 부재에 따른 일방적 국정 운영에 대한 반발이 선거 대패로까지 이어졌다.
◆딜레마에 빠진 보수
대한민국 보수도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21대 총선에 이어 22대에서도 너무나 크게 패한 까닭이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가 정치 지형에서 소수파라는 게 확인됐다. 중도와 손을 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승리하기 어렵다는 게 드러났다.
특히 수도권에서 중도 끌어안기는 큰 숙제다. 전체 지역구(254석)의 절반(122석)이 수도권에 있어서다. 이번에 수도권에서 국민의힘 19석, 민주당이 102석을 차지했다. 지난 총선 수도권(121석)에서 국민의힘은 17석(윤상현 의원 포함), 민주당 103석을 건졌다.
48석인 서울만 따지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11석, 민주당 37석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4년 전에 비해 3석이 늘었지만 기대했던 '한강 벨트'에서 무너졌다.
서울은 역대 선거에서도 보수당이 승리하기 쉽지 않았다. 보수당이 차지한 의석을 보면 2002년 17석, 2004년 16석, 2008년 40석, 2012년 16석, 2016년 12석, 2020년 8석이었다. 2008년은 이명박 대통령 당시 뉴타운 이슈 덕분에 거둔 승리였다.
60석이 걸린 경기도는 4년 전보다 성적이 더 나빠졌다. 국민의힘 6석, 민주당 53석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7석, 민주당 51석, 정의당 1석이었다.
앞으로 수도권에서 유의미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선거 승리는 사실상 어렵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보수가 수도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진중권 작가는 '보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보수가 그동안 반공과 시장에 집착한 탓에 정책적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시대정신을 읽는 데도 능숙하지 못해 박정희 대안 서사(산업화) 구축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 작가의 진단이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소수파라는 게 명확하게 확인된 지점에서 보수의 미래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보수가 대패한 상황에서 영남 텃밭을 지킨 건 다행이었다. 확실한 텃밭을 가지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어서다.
영남권 전체 의석 65석 중 국민의힘 59석, 민주당 5석, 진보당 1석을 각각 차지했다. 4년 전에는 국민의힘 56석, 민주당 7석이었다. 국민의힘은 3석 늘었고, 민주당은 2석 줄었다.
대구경북(TK)은 국민의힘이 25석을 모두 싹쓸이했다.
40개 의석이 걸려 있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선 국민의힘 34석, 민주당 5석, 진보당 1석을 각각 얻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32석, 민주당이 7석 승리했었다. 국민의힘은 2석 늘었고, 민주당은 2석 줄었다. 낙동강 벨트 사수에 성공한 셈이다. 흔들렸던 영남이 선거 막판 지지층이 결집한 덕분이다.
대패를 했다가도 대승을 거둘 수 있는 게 선거다. 승패보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패배에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패배가 일상화되는 정치 세력은 퇴출되는 게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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