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스페인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면 한니발 전쟁의 격전지인 동남부 연안의 카르타헤나(Cartagena)를 마주하게 된다. 카르타헤나 시칠리섬에서 제1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에 패배한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 장군은 로마에 복수하기 위해 기원전 227년 스페인 동남부 해안에 카르타고 식민지를 세웠다. 그의 아들 한니발은 5살이었다. 한니발은 신전(神殿)에서 로마를 적으로 삼을 것을 맹세했다. 한니발의 로마 징벌 다짐은 현실이 되었다. 로마를 무력화하기 위한 한니발 전쟁(제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년~202년)의 영웅 한니발 바르카는 로마 대전을 벌이면서 "길을 찾을 수 없다면, 길을 만들어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기세를 몰아 눈이 몰아치는 알프스 산맥을 타고 로마로 진격한 카르타고는 수많은 승전을 올렸지만, 그로부터 16년간의 전쟁으로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멸망하게 된다. 고대 도시국가였던 카르타고 전쟁의 역사를 환기한 것은 신진호 연출이 대학로 쿼드 극장에서 무대화한 극단 비밀기지의 <카르타고> 때문이다. 그렇다고 <카르타고>가 고대 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사라진 고대 도시국가 '카르타고'를 연상할 수 있는 제목을 붙였을 뿐이다. 공연 이야기로 돌아가자.
◆ 연극 <카르타고>와 고대 도시국가 '카르타고'의 토페트 신전의 영혼
연극은 보호 감찰 수감자인 애니(조수연 분)에게서 태어나 교도소에서 자란 15세 소년 토미(최호영 분)의 죽음을 다룬다. 10대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 뒤에 숨겨져 있는 현대 사회 복지 제도의 한계를 다루고 있다. 애니는 15세에 교도소에서 토미를 출산했다. 토미는 폭력, 욕설, 마약에 익숙한 엄마를 성장하면서 닮아간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이들의 사회적 갱생을 돕는 사회복지사 수(김정아 분)가 토미를 돌본다. 교도관 마커스(유독현 분)는 토미의 죽음으로 법정에 서게 된 후 무죄로 풀려난다. 토미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은 범죄 스릴러보다 더 극적이다. 작가 크리스 톰슨은 토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사회복지사, 교도관, 경찰)을 가해자로 특정하지 않는다. 연극이 사회적 의제로 발화(發火)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카르타고>는 청소년의 마약과 범죄, 법과 제도, 아동 양육,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와 안전 시스템의 문제를 저격한다. 토미의 죽음의 원인을 국가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 것이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토미는 생물학적 부모를 이탈한 공공의 아들이지만, 그의 죽음의 가해자는 사회 제도의 문제를 보완할 수 없는 현대 사회 구조로 보고 있다. 고대 도시국가 카르타고와 이 작품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신의 제물로 바쳐진 카르타고 아이의 혼령은 튀지니 토페트 광장에 수천 개의 묘석으로 남겨져 있다. 토페트 신전은 페니키아인들의 절대신 바알하몬과 아내 타니트 여신의 신전이다. 페니키아인들은 장자를 신의 제물로 바쳤고, 후손인 카르타고인들도 국가와 전쟁의 승리를 위해 아이들을 신의 제물로 바쳤다. 눈치챘겠지만, 연극 <카르타고>와 고대 도시국가 카르타고가 연결되는 지점은 아이들의 '희생'이다. 고대 토페트 신전에 바쳐졌던 희생의 제물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감옥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다 죽음을 맞이한 토미의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연극은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연극 <카르타고>는 작가 크리스 톰슨이 범죄자와 아동·청소년를 사회복지사로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첫 작품이다. 그런 만큼 등장하는 극 중 인물들이 현실처럼 선명하고,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과 극적 갈등은 진실 게임 조각을 맞춰 나가는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신진호 연출은 <카르타고>를 '두산 아트랩 2021'를 통해 그려낸 바 있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 사업 선정작이 되면서, 서사 중심에서 사회 구조와 제도에서 의지한 극 중 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확장했다. 엄마 애니와 토미의 비극적인 삶을 사회 구조적 관계 속으로 확장했다. 그동안 청소년연극에 관심을 가져온 신진호 연출은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학교 밖 청소년들의 출구 없는 삶과 사회공동체의 붕괴를 형상화한 <소년대로>, <낭떠러지의 착각>, <사라의 행성>, <종이 인간>, <라이더>, <요즘 젊은 XX들- 쾅, 연어, 용서의 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 <카르타고>는 블랙 박스 쿼드 극장 전체를 무대로 활용한다. 극적 사건들이 진행되는 무대 공간을 중앙의 가운데 두고, 객석은 원형구조로 등퇴장이 원활할 수 있도록 무대를 둘러싸고 있다. 쿼드 극장의 2층 공간은 교도소 방으로 이동하는 구조로 활용된다. 무대는 미니멀하다. 무대 1층에는 탁자 3개, 의자 서너 개가 놓이고, 무대 2층은 조명 램프를 연결해 각각 장면(교도소, 토미와 애니의 집) 등으로 활용했다. 관객들은 현장 검증을 나온 감시관처럼 교도관 마커스의 관점으로 재현되는 상황들을 마주하고, 국민재판에 참여하는 것처럼 개방적인 무대를 바라볼 수 있다.
◆ 토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의 추적
연극은 토미의 죽음을 쫒아가지 않는다. 토미의 죽음을 던져놓고 책임의 진실을 추적한다. 극은 어두운 조명때문에 시공간을 특정하기 어렵다. 나이키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토미에게 "이제 가봐야 돼"라는 엄마 애니 말이 들릴 즈음, 무대는 토미가 죽은 교도소 내부로 추정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교도관 마커스, 사회복지사 수, 소년원장 카린(장현우 분)이 보인다. 토미의 죽음을 둘러싼 정보를 줄 수 있는 대화들이 쏟아진다. 토미가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왔다는 마커스는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호한다. 토미를 제지한 정당한 합법적 근거가 없다며, 징계에 대한 진술을 바꿔보라고 조언하는 카린, 규칙대로 했을 뿐 책임은 없다고 말하는 마커스, 토미와 마커스의 당일 행적이 고스란히 녹화된 영상을 마주하면서도 사회복지사, 교도관, 소년원장은 자신들은 토미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는 태도를 취한다. 공연은 토미의 죽음 전후 시간이 역주행하며 진행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만삭이 된 15살의 애니의 폭력적인 성향들이 보이고 임신을 무기로 TV에 집착을 보이는 애니가 등장한다. 과격한 행동과 거짓말로 시몬(양지영 분)과 수를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레즈비언으로 몰아붙인다. 욕설과 거짓말, 폭력적 행동을 하면서도 아이를 교도소에서 키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애니, 4장까지는 토미의 죽음과 애니의 출산, 그리고 사회복지사 수가 애니와 토미를 감찰하며 사회 복지 제도를 통해 보호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5장부터는 토미 죽음을 둘러싼 마커스와 사회복지사 수의 진실 공방이 보여진다. 교도소에서 자란 토미의 죽음이 사회복지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마커스와 CCTV 영상이 마커스한테 정당방위처럼 유리하게 해석되고 있다고 말하는 수는 죽은 토미와 자신한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며 마커스를 비겁한 인간으로 몰아붙인다. 침착하던 수의 입에서 "비겁한 새끼 마커스! 넌 진짜 씨발 개새끼야"라는 욕설이 터져 나온다. 두 인물의 진실 공방을 둘러싼 대립 구도가 흥미로웠던 것은, 그것이 애니와 토미의 인권과 복지 제도, 국민으로 안전하게 보호될 수 없는 사회 복지 구조의 구멍난 시스템을 들춰내고 있기 때문이다.
6장에서는 엄마 애니의 청소년기처럼 살고 있는 토미의 삶을 보여준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엄마 애니의 전철을 밟고 있는 토미는 엄마의 아파트 거실에서 코카인(마약)으로 환각 상태에 빠져든다. 7장에서는 경찰에 연행되어 교도소로 들어온 토미와 마커스의 만남이 보여지고, 8장에서는 토미의 죽음 이후 CCTV 영상에 담긴 진실의 실체를 마커스의 시선으로 쫓아간다. 관객들은 토미의 죽음 이전까지의 시간이 담겨있는 영상을 판독하는 것처럼 무대를 지켜보게 된다. 10장에서는 문제의 그날, 토미의 죽음을 다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토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마커스와 사회복지사 수가 보인다. 작가는 나이키 운동화와 트레이닝복을 선물로 받고 싶었던 청소년 토미의 속마음과 엄마 애니의 프롤로그 대화 장면을 교차시킨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을 사회적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토미, 그런 토미로 부터 애니의 난폭한 교도소 생활을 떠올리는 교도관 마커스, 걷잡을 수 없는 흥분 상태의 토미의 장면이 그려진다. 이성을 잃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아오른 두 눈으로 두 교도관을 향해 거친 저항을 하는 토미. 사랑과 사회로부터 격린 된 토미의 고립된 내면은 광란의 분노로 휩싸이고 무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최호영은 배우로 이 장면을 매력적으로 느낀 듯 하다. 기다렸다는 듯, 감정을 통제 할 수 없는 극중인물 토미로 분한 본능적인 연기 감각을 쏟아낸다.
◆ 숨을 쉴 수 없는 사회 안전 시스템, 그리고 죽음
토미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토미 곁을 떠나게된 사회복지사 수는 마이클 조던의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와 운동복을 생알선물이자 작별선물로 사온다. 교도관 마커스와 수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방으로 돌아가자는 마커스의 말에 토미는 나이키 운동화를 집어 던지고 흥분된 상태를 보인다.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어긴 엄마에 대한 토미의 서운함, 엄마와 통화할 수 없다는 토미의 절망감은 광기 어린 분노로 나타나고, 무대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마커스는 운동화와 운동복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층 난폭하게 저항하는 토미의 팔을 꺾어 강제 진압하는 교도관 알렉스(김준광 분)와 마커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마커스..제발..진짜 죽을 것 같아. 얘네 좀 떼줘. 제발 부탁이야. 미안해, 미안하다고 씨발, 그러니까 제발... 숨을 못 쉬겠어. 엄마, 마커스, 숨을 못쉬겠어"라며 발작 상태로 죽어가는 토미. 알렉스가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마커스는 토미의 행동을 거짓이라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의 마지막은 마커스가 CCTV를 올려다 보는 것으로 처리된다.
11장은 토미가 죽은 뒤 2년이 지난 시점이다. 토미의 기일(忌日)에 만난 애니와 마커스의 대화로 채워진다. 2년 전 애니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는 마커스는 무죄 판결 뒤에도 토미의 죽음에 대해 "이기지 못했고 얻지도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용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토미한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애니. 교도관들이 자신들을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처럼 대했다고 말하는 애니와 자신의 아들을 보러가겠다는 마커스의 대사 사이로, 시공간의 시차를 알 수 없는 꿈처럼, 프롤로그의 애니와 토미의 대화가 들려온다. 토미가 기다린 것은 나이키 운동화와 편지로 표상되는 엄마의 사랑이다. 토미의 죽음은 카르타고 토페트 신전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죽음이다. 그들 어린 영혼을 평화롭게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동들의 돌봄과 소외계층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사회 시스템이지 않을까. 희곡의 탄탄한 구조가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60% 이상을 보장했고,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연극 <카르타고>를 견인했다.
특히 사회복지사로 분한 배우 김정아는 소외계층의 가족같은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는 극 중 인물 수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본능적으로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사회복지사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 복지 제도의 부조리한 모순을 제대로 드러내 주었다. 토미로 분한 최호영의 힘을 뺀 강렬한 연기와 교도관 마커스의 유연한 연기는 캐릭터의 대비를 끌어내며 이들의 갈등을 구조적으로 증폭시켰다. 연극 <카르타고>는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 톰슨의 경험을 극화한 내용이지만, 한국 사회의 문제로도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연출과 배우의 앙상블이 극의 배경과 토미의 죽음을 이질적이지 않게 무대화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연출보다 작가가 더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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