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밴 앤셀 지음 / 한국경제신문 펴냄
새해 벽두부터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주주의의 중요 이벤트인 '총선'이 지난 10일 끝났다. 민심은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무게를 실었다.
선거로 들썩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올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세계 인구의 25퍼센트가 선거에 참여한다. '슈퍼 선거의 해'라고 할 만하다.
어쨌거나 이번 총선의 참여도는 높았지만 과연 사람들은 정치를 신뢰할까? 정치의 필요성 혹은 효용감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혐오가 팽배한 것이 현실에 가깝을 것이다. 정책보다는 양당의 힘싸움으로 변질된 총선을 보며 과연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정치란 존재하기나 할까 의문마저 드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책 밴 앤셀의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는 정치에 희망이 있다며 정치가 실패해온 이유를 찾고자 한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옥스퍼드대 교수로 임용된 그는 촉망받는 정치학자다.
저자는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이라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는 중요 가치를 통해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목표가 불일치하면서 빚어지는 우리 사회를 둘러싼 딜레마를 진단한다. 저자는 이를 '덫'이라고 표현했다. 그 불일치 안에서 타협과 협의의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경우 사람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덫 중심에는 이런 불일치가 존재한다. 즉 '국민의 뜻'과 같은 것은 '없다'"고 일갈한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사례만 봐도 여실히 드러나는 문제다.
평등 문제도 난제다. 평등한 권리를 허용하면 평등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을 평등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연대의 덫'도 있다. 누가 기여자이고 누가 수혜자인지, 연대의 범위가 지구 단위일수도 있고, 가족에 한정될 수도 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면서도 자유를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이 사실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극명히 드러났다. 행정당국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했지만 일부 국가의 시민들은 자유를 주장하며 행정 조치에 반발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독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무정부 상태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번영의 덫도 있다. 단기적으로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이고, 약속을 어기고, 착취함으로써 즉각적인 이익을 취하려 하고, 다른 이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간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할 때 전체는 무너진다.
앞서 살펴본 다섯 가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정치의 역할에서 찾는다. 정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는 필연적인 불일치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정치를 외면하거나 피해 달아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물론 쉽지는 않은 길이다.
저자는 이러한 덫의 존재를 먼저 인정하고 정치의 필요성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집단적인 목표가 좌절되는 것은 개인의 다양한 이기심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하만 타협과 조정과 균형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치를 두고 "딱딱한 판에 서서히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말했듯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혼돈을 극복하고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그것이 불일치를 해소했다는 말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종종 승자와 패자 사이의 소리 지르기 시합으로 변질되면서 친구와 이웃을 가르고 사회를 양극화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즉 정치가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혼돈과 양극화 사이의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문장은 막 총선을 끝낸 대한민국 정치에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472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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