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과수 냉해 또 닥칠까"…속 타는 농심

입력 2024-04-02 16:37:33 수정 2024-04-02 16:42:55

[이상기후에 흔들리는 경북 농업] 극심한 일교차, 이상 고온에 개화 시기 빨라져…"때늦은 추위오면 냉해 우려"
참외 등 시설작물 "3월도 일조량 많지 않아…4·5월이 더 걱정"

대구 칠성시장의 한 과일가게 사과 판매 가격이
대구 칠성시장의 한 과일가게 사과 판매 가격이 '1개 만원', '3개 2만원'으로 표시돼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과실 물가 상승률은 40.6%로 32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특히 이상고온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금값'이 된 사과는 71%, 대체재인 귤은 78% 넘게 올랐다. 매일신문 DB.

빈번한 이상기후 여파로 경북 시설·과수 재배농가의 시름이 깊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하는 참외 등 시설작물은 유난히 잦던 겨울비에 생산량이 줄고 병해충 피해까지 입어 상품성이 하락했다.

하루만에 영하와 영상을 오가는 봄철 이상고온은 꽃눈 개화를 앞당기고 냉해·병충해 위험도 높이면서 과수농가들의 생산 기반을 흔든다.

지난해 심각한 냉해로 재배 면적의 40% 이상 피해를 입은 도내 기초단체와 과수농가들이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없어 가슴만 졸이는 형편이다.

◆냉온탕 넘나드는 날씨…타 들어가는 농심

"동해에 냉해, 서리까지 매년 저온 피해가 막심하죠."

지난달 25일 오후 경북 예천군 효자면 한 사과밭. 사과꽃 개화기를 앞두고 전정 작업을 마친 농장주들이 모여 저마다 저온 피해 예방 사례를 공유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경북에서는 과수면적의 41.3%에 달하는 2만367㏊가 개화기 저온피해를 입었다.

최대 관심사는 한 농가에 설치 중인 '열풍 방상팬'이었다. 대형 팬을 이용, 보일러에서 만든 열기를 농장 전역에 바람으로 불어 보내 냉해를 막는 기술이다. 대형 팬 1대 당 2천500㎡를 감당할 수 있지만 설치 비용이 1대에 750만원이나 된다.

한 농장주는 "자부담 지출이 크긴 하지만, 이 기술로 냉해를 90% 이상 예방한 사례가 있어 올해 설치해보고 경험을 공유할 생각"이라고 했다.

경북 예천군 효자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병호(66)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예천지회장 열풍 방상팬에 대한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윤영민 기자
경북 예천군 효자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병호(66)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예천지회장 열풍 방상팬에 대한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윤영민 기자

그러나 적잖은 시설 투자 외에는 저온 피해를 막을 방안이 마땅찮다.

임병호(66) 전국사과생산자협회 예천지회장은 "15년 농사를 지으면서 피해를 보지 않은 해가 없다"며 "봄철에는 하루이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피해가 크다. 지난해 예천에서도 사과 재배 면적의 30~50%가 냉해를 입었지만 예방이 쉽지 않다"고 했다.

재배 면적 당 소득이 높은 사과·배 등과 달리 소득이 비교적 낮고 전업농이 드문 자두 등과수농가는 대책 마련에 어려움이 더 크다.

지난달 25일 오후 의성군 봉양면 한 자두밭. 30년 간 자두 농사를 지은 김동출(67) 씨는 "지난해 4월 자두나무 총 1천200그루 중 60%에 이르는 냉해를 입었다"며 "올해도 걱정이 크다"고 한숨지었다.

경북 의성군 봉양면에서 자두농사를 짓는 김동출(68) 씨가 꽃망울이 맺힌 자두나무를 보며 올해 냉해 피해 재발을 우려하고 있다. 장성현 기자.
경북 의성군 봉양면에서 자두농사를 짓는 김동출(68) 씨가 꽃망울이 맺힌 자두나무를 보며 올해 냉해 피해 재발을 우려하고 있다. 장성현 기자.

의성에서 자두꽃은 통상 4월 5~10일 사이에 피고, 수정까지 7~10일이 걸린다. 이에 수정이 이뤄지는 4월 중순 새벽 기온이 영상 1도까지만 내려가도 지장이 생긴다.

반대로 낮 기온이 너무 오르면 속이 빈 열매를 맺는 '주머니병'이 생기고, 극심한 일교차로 꽃망울이 벌어지는 시기 갑자기 기온이 내리면 다시 꽃망울이 닫히면서 수정 시기를 놓친다.

김 씨는 "자두는 재배 면적 당 소득이 사과에 비해 낮고 대규모 전업농이 드물어 열풍방상팬이나 미세 살수장치 등 시설 투자가 쉽지 않다"며 "냉해 경감 영양제 등의 효과도 사과와 달리 정확한 살포 시기 등의 연구가 부족해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2일 경북 성주의 한 참외 농가에서 주인이 병충해가 들어 썩은 참외를 골라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계속된 비와 흐린 날씨로 부족한 일조량 탓에 봄철 과일 재배 농가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일 경북 성주의 한 참외 농가에서 주인이 병충해가 들어 썩은 참외를 골라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계속된 비와 흐린 날씨로 부족한 일조량 탓에 봄철 과일 재배 농가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작황 부진 참외 "4, 5월이 더 걱정"

올해 성주참외는 겨울철 일조량 부족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더불어 착과 불량, 생육지연, 발효과 폭증 등 작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평소라면 출하가 한창일 때지만, 그나마 열린 참외도 달걀만큼 작아서 상품성이 없다.

성주군 성주읍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권모(68) 씨는 "비상품은 증가하고 소득은 지난해보다 턱없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선남면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박태원(46) 씨도 "벌통을 두고 인공수정까지 해도 날씨가 흐리고 기온이 낮아 수정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대로라면 수확 물량이 쏟아지고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4, 5월에도 출하량과 품질에 각한 차질이 우려된다.

강도수(월항농협장) 한국참외생산자협의회장은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은 한 달 이후에 나타난다"면서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되면 5월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일 경북 성주의 한 참외 농가에서 주인이 병충해가 들어 썩은 참외를 골라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계속된 비와 흐린 날씨로 부족한 일조량 탓에 봄철 과일 재배 농가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일 경북 성주의 한 참외 농가에서 주인이 병충해가 들어 썩은 참외를 골라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계속된 비와 흐린 날씨로 부족한 일조량 탓에 봄철 과일 재배 농가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정부·지자체 대응 방안 마련 부심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일조량 부족에 따른 농작물 생육부진을 농업재해로 인정하고 피해 조사에 나섰다. 일조량 부족이 농업재해로 인정된 건 2010년 이후 두 번째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해복구계획을 세워 이달 중 피해 농가에 재해복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경북도는 기상 재해 및 응급 상황 전파를 위한 품목별 농가 비상 연락망 구축, 저온 피해 경감제 공급 및 적기 살포 홍보, 재해 예방시설 설치 등 생육환경 관리에 나섰다.

열풍방상팬, 미세살수장치 등 재해 예방시설을 확대하고, 14개 시·군에 설치비용 62억원(농가 630곳, 409㏊)도 지원한다.

16개 시·군에는 14억원을 지원해 저온 피해 경감제를 보급할 계획이다. 의성과 청송, 영주, 안동 등 9개 시·군은 자체 사업비 23억원으로 약품 살포 등에 나선다.

이재동(58)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은 "정부의 농업 재해 보상은 현실적이고 실질적 보상이 돼야 한다"면서 "농산물재해보상법 제정과 농업 기반시설 지원 등을 통해 농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