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의대정원 2천명 증원에 따른 전국 40개 의과대학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의대정원 확대에 따른 정부와 의사들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 같아서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의대정원 증원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현재 대두되고 있는 필수의료분야 의사 및 중소 도시와 농어촌 지역 의사의 부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나아가 앞으로 예상되는 노년 인구 급증에 따른 의료수요의 폭발적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가 시급히 요구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수의료분야 의사가 부족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단순히 의사의 수가 적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기 보다는 왜곡된 의료수가체계나 의사에게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적 문제가 더 큰 원인이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이 먼저라는 의사들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수가의 인상,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조치, 그리고 의료 사고 발생 때 법적 책임을 대폭 줄여주는 내용의 '의료 사고 처리 특례법'의 제정과 같은 정책의 추진을 약속하면서 의사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그 동안 쌓여왔던 정부에 대한 불신이 대화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취약점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제도는 나라마다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의료의 공공성을 중시해서 국가나 공공기관이 모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주의적 방식과 민간이 직접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방식에서 의사는 국가에 고용된 피고용인의 신분이지만, 후자에서는 의사가 의료기관의 경영주로서 경영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전자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의료가 제공되지만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고, 후자에서는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과중하게 되어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공공 점유율이 11%에 불과하고, 민간의 의료서비스 점유율이 89%에 이르기 때문에 얼핏 보면 의료제도가 민간 주도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간 의료기관은 민간이 자기 자본을 투자해서 설립한 자기 소유의 의료기관이지만, 국민건강보험법에 의거하여 의료보험 요양기관으로 강제지정됨으로서 전 국민의 건강보험수급권을 보장하는 공공의료기관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수가도 정부가 정해주는 대로 받아야 하고 의료행위도 정부가 정해준 기준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민간 의료기관으로서의 자율적 경영은 애초부터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의료보험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와 정부의 의료비 저수가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우리 국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국민들은 어느 병의원에 가도 의료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고, 진료비도 저렴하기 때문에 의료기관 이용이 매우 편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21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외래진료 횟수가 15.7회로서 OECD 국가 평균 5.9회보다 2.6배나 많아서 의료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경영주인 의사는 저수가 정책 때문에 과도한 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의료기관이 도산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병원경영과 관련하여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그와 더불어 의사들에게 병원 개원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아울러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최재갑 경북대치과병원 구강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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