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 괴한 3명 침입 난사 후 불질러 공연장 지붕 붕괴
테러범, 바닥에 쓰러진 시신들 향해서도 총격 가해
핵심 용의자 4명 포함해 사건 관련자 총 11명 검거
러, 우크라가 배후 의심…우크라 "우린 관련성 없어"
지난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에서 수천명이 모인 콘서트 직전 무차별 총격과 방화 테러로 수백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달 치러진 대선에서 5선에 성공해 '현대판 차르'에 오른 지 며칠 만에 사실상 모스크바 심장부가 뚫리는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날 총격 직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고, 우크라이나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무장 괴한 3명 침입 총기 난사
22일 저녁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괴한 최소 3명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후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번 테러로 현재 143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확인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최소 3명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사태부는 사건 당시 공연장 지하를 통해 약 100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에는 홀 외부의 상가에서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후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발생했다. 타스 통신은 불이 기관총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건물의 3분의 1가량이 불 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무차별 총격과 방화 테러를 벌인 용의자들이 하루 만에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이 사건 관련자 총 1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이 구성한 사건 조사위원회는 핵심 용의자 4명이 모두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검거됐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이 보로비요프 모스크바 주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소방·구조인력 719명이 사건 현장에 투입돼 구조물 해체 및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며 "작업이 적어도 며칠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 범벅 참혹했던 테러 현장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당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안드레이(58)는 23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이 '침착한' 모습으로 혼비백산한 관객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테러범이 '산책하러 나온 것처럼' 공연장 로비를 조용히 걸어 다니며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무대 옆 비상구를 열어 사람들을 공연장 안으로 안내했지만, 테러범들까지 따라들어온 게 문제였다. 총성이 계속됐고 두번의 폭발음이 들리더니 갈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불이야"라고 외쳤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이 부부는 다행히 주차장으로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10대 소녀는 러시아 국영 통신사 RT에 "그들이 우릴 봤다. 한명이 돌아와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렸고 죽은 척 했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테러범이 바닥에 쓰러진 시신들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다며 "내 옆에 누워있던 여자아이는 죽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콘서트 시작 몇 분 전에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엔 총소리가 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리나(27)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콘서트의 일부인 줄 알았다"며 "그러나 어느 순간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복으로 위장한 남성이 자동소총을 들고 콘서트장에 들어오는 것을 봤다. 사람들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고, 옆에는 다친 사람들이 피범벅이 돼 있었다고 아리아는 전했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은 참혹하고 혼란스러웠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지 언론 바자(Baza)에 따르면 사람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찾았던 화장실에서 시신 28구가 발견됐다. 비상계단에서도 14구가 나왔다.
◆러, "우크라가 배후" 보복 경보
러시아는 이번 총격·화재 사건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배후에 있다면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날 "그들이 키이우 정권의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들 모두는 찾아지고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테러리스트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국가의 대표들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사건 조사위원회는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100㎞ 떨어진 브랸스크 지역에서 곳에서 붙잡혔으며, 이들이 국경을 넘으려 시도했고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성명에서 "우리는 이 잔혹한 범죄자들이 박해를 피해 어느 나라로 숨어들 계획을 세웠는지 알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라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직접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고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자작극"
우크라이나는 이번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격 테러 사건과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 밤 텔레그램에 성명을 내 "어제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일로 푸틴 대통령 등 쓰레기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비난하려고만 한다"며 "그들은 늘 같은 수법을 쓴다"고 밝혔다.
이어 "이 무가치한 푸틴 대통령은 하루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이번 일로 러시아 시민을 상대하는 대신 우크라이나로 떠넘길 방법을 생각해냈다"며 "모두 뻔하게 예측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도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공연장 테러 공격에서 러시아 관리들이 '우크라이나의 흔적'을 언급할 것은 예상된 일"이라면서 "러시아 정보당국의 주장은 전혀 지지할 수 없고 터무니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IS는 이날 총격 피해가 알려진 직후 텔레그램에 올린 성명에서 "(IS 전투원들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대형 모임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 용의자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3일(현지시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이날 한 용의자는 검거 직후 "나는 돈을 위해 공연장에서 사람을 쐈다"며 애초 범행 대가로 50만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각국들도 애도를 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유가족과 러시아 국민들, 러시아 연방 정부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테러 공격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우리는 이 극악무도한 범죄로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명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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