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시인
영국 웨일스 지방에 아름다운 풍경 속에 그림 같은 '헤이 온 와이'라는 마을이 있다. 산간벽지의 폐광촌으로 전락한 마을 전체가 헌책방과 골동품점으로 꾸며져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이 마을에서 매년 백만 권 이상 책이 판매되고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 마을이 동기가 되어 유럽의 여러 나라와 호주, 미국, 한국의 헤이리 등 세계적으로 50여 개의 책마을이 만들어졌다.
작년 여름 앞산 카페 골목에 괴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이전한 빵집 공간을 넘겨받아 시집 전문 책방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와 책 향기에 빠진 그는 주위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집 전문 책방에 일흔의 열정을 불태웠다. 대구 경북 지역뿐 아니라 제주도까지 전국은 물론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 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책이 쌓일 때마다 고객도 늘어났고, 비아냥거렸던 친구들도 책방지기의 열정에 감동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모두 책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작은 책방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앞산 자락의 시집 전문 책방에 가면, 또 다른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아직도 나뭇잎 냄새를 간직한 듯 책 향기가 감성을 일깨우고, 책장을 조심스레 넘길 때면, 웅숭깊은 시인의 가슴처럼 따뜻한 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남들은 하던 일도 접는다는 나이에 돈 안 되는 시집만 파는 책방의 창업을 준비한 한 달 동안의 기록을 정리해 펴낸 자전 에세이 '일흔에 쓴 창업일기'도 덩달아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시집 전문서점 창업 교실'을 개최한 바 있다. '세상에 詩를 뿌리자!'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이 날 강좌는 보다 안정적인 시집 전문서점 창업을 통해 우리 시(詩) 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였다. 이날 창업교실에 참여한 상당수의 사람이 책방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엊그제 '산아래 시' 책방지기와 함께 군위 고로에 있는 어떤 시인의 촌집에 다녀왔다. 지난번 창업교실에 참석한 그 시인으로부터 산골 오지 촌집에 책방을 차리겠다는 엉뚱한 발상과 어깃장 철학을 들으면서 쇠락해가는 폐광촌을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헌책방 마을 '헤이 온 와이'로 탈바꿈 시킨 책을 사랑한 '리처드 부스'의 열정과 성공신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요즘 한 집 건너 한 집 생기는 카페나 편의점처럼,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자꾸만 늘어나면 좋겠다"는 시집 전문 책방 '산아래 시'의 소망이 봄바람 타고 민들레 홑씨처럼 번지고 있다. 책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책, 나를 바꾸고, 바뀐 나로 인해 타인이 영향받는 도미노 같은 책의 잠재력을 우리는 믿는다. '산아래 시' 열풍이 전국 방방곡곡 골목골목마다, 그리고 산간벽지 농촌마을에 책방이 많이 생겨나는 훈풍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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