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사)한국극작가협회(이사장 안희철)가 주최한'제6회 대한민국 극작엑스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K-극작, 세계인의극으로!' 3일간 프로그램은 알찼다. 1일 차에는 '극작가 故 '엄인희 다시 읽기' 세미나가 진행됐다. 주제발표는 <엄인희 극작술 연구를 위한 시도> (양세라 교수, 토론, 우수진 연극평론) <극작가 엄인희와 1990년대의 페미니즘>(전지니 평론가, 토론 황승경 교수), <엄인희 희곡에 나타난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김윤미 교수, 토론, 김정숙 연출)와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이 낭독공연으로 이어졌다. 2일 차는 시민참여 낭독공연 <희곡 있사옵니다1>, 신진작가 프리뷰 낭독공연(작 임선영 연출 이슬비 극단 난연), 고려대학교 홍창수 교수의 '극작가 이근삼 희곡의 풍자 세계'가 이어졌다. <애견기>(작 이근삼 , 김정근 연출, 공연예술제작소 비상)도 희곡의 특징을 입체적인 낭독으로 구현하는 무대를 보였다. 막내딸 (이유정 교수, 무대미술가)가 참여해 토크로 진행된 '이근삼 극작가를 이야기하다'에서는 이근삼 선생의 만두 사랑과 미 유학 시절 희곡도 소개했다. "새해 신정이 되면 아버지가 평안도 사람이라 만두를 빚었어요. 손님들이 며칠 동안 계속 찾아오셨죠. 가족들은 평생 잠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 집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아버지는 늦은 시간에도 친구와 제자들과 집에서 얘기하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그만큼 아버지는 연극인들과 제자들을 좋아하시면서도 항상 유쾌하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희곡으로 담아진 듯합니다."이근삼 선생의 삶과 인생은 60, 70년대 한국연극 역사를 느끼게 했다.
3일 차 마지막 날에는 시민참여 낭독공연<희곡 있사옵니다 2>과 신진작가 프리뷰 낭독공연 <불우이웃돕기>(작, 한서연 연출, 전청일 극단, 지즐>, '극작가를 위한 인문학 특강'(여해 연구소 이사장)으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강의가 열렸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난상토론 세미나도 유쾌했다. 이홍기 대표(대구연극협회)는 주제 발제로 '연극의 대중성, 예술성, 상업성의 경계'에 대해 충분한 리서치 조사로 방향성을 진단했다. 박정의 회장(서울연극협회)은 " 공연예술계의 양극화 현상은 공연 제작 보조금 지원보다는, 정부의 창작지원금 제도가 더 확대되어야 하고, 공연장 상주단체 제도를 정책적으로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며 지원금 정책, 상주단체, 국립극단 역할에 대한 토론을 이끌었다. 주제발표 후에는 지원금 수혜의 창작자 역할, 작품성과 예술성의 방향, 연극 소비 운동과 관객개발 등 다양한 담론들이 객석에서 쏟아졌다. 현재 방식의 지원제도가 유용한지 대한 토론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김나영(작가) 사회로'대한민국 극작가 다모여' 난상토크 (패널 양수근, 국민성 작가)가 참여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탤런트 양미경 씨가 '대한민국극작가엑스포'와 '한국극작가협회' 국제교류사업 홍보대사 위촉을 끝으로 3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극문학축제의 전시 부대행사이면서도 극작 엑스포의 성격이 잘 드러난 것은 이음아트홀 갤러리에서 진행된 'K–극작, 세계인의 극으로', '한국희곡 명작선', '故 엄인희 展', '작고 문인 선양사업인 故 이근삼 展' 전시와 '희곡 마켓'이다.
◆제6회 대한민국 극작엑스포 '희곡마켓''故 이근삼, 엄인희 특별展
갤러리 벽면은 미술 회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160권의 단행본 희곡 명작 표지를 입체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고 문인 5인 작품(이근삼, 박조열, 차범석, 윤조병, 엄인희)은 육성 영상, 자필 원고, 만년필, 필기도구, 생활 소품 등으로 전시공간을 마련해 작품세계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故 엄인희, 이근삼 展은 특별했다.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해 교수, 희곡작가, 연극학자로 살아오신 이근삼 선생(1929~2003)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은 격동하는 한국연극 역사를 그대로 보는듯했다. <국물 있사옵니다>(1966), <제18 공화국>(1965), <유랑극단(1971)>, <아벨만의 재판>(1977), <낚시터 전쟁>(1988), <막차 탄 동기동창>(1991),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1998) 등이 수록된 『이근삼 희곡전집』(1~6권)과 『연극개론』 책도 보였다. 사진속 이근삼 선생은 그 시절 그대로였고 생전(生前)영상의 평안도 말투는 희곡에 내재되어 있는 해학과 풍자의 칼날처럼 느껴졌다.
이유정 씨는 올해 이근삼 선생님의 작고 20주에 맞춰 희곡, 대본, 삶과 인생, 연극 관련 서적과 미완의 희곡들을 아카이빙해 홈페이지(www. leegunsam.com)를 개설해 공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추모 5주년 기념으로 제자들이 헌정한 6권의 희곡전집에 수록된 「희곡론」과 『구미연극 산고』를 다듬고 정비해 『극작가 이근삼 교수의 연극 이야기』가 발간됐다. 『연극개론』,『서양 연극사』도 연극과 인간을 통해 올해 3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한 노장의 연극인께서 이근삼 선생을 회고한 말이 떠올랐다. 대학 정년 후에도 전국에 제자들을 찾아 다시며 연극 이야기를 하시던 호탕하시던 성품이 잊혀지질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 옆 통로 한쪽에 전시 되어 있는 故,엄인희 작가(1955~2001)의 사진과 대표희곡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작은 할머니>, <비밀을 말해줄까> 희곡들은 '그때 그 연극 故 엄인희 展'으로 전시되면서 희곡마켓의 관심을 높였다. 세미나와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낭독극 공연과 토크쇼로 진행된 '극작가 엄인희를 말하다'는 제6회 대한민국 극작엑스포 극문학 공연예술축제 의미가 각인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밖에도 한국희곡명작선은 지난해까지 발행된 단행본 희곡 명작 130권과 30명의 대표 희곡작가들을 선정해 발행되었다. 올해는 160여 권의 한국 희곡명작을 전시하고 오픈마켓으로 판매행사도 진행되면서 작가와 희곡의 대중적인 소통 역할을 하고 있다. 1~5권은 윤대성< 나의 아버지의 죽음> 홍창수 <오늘 나는 개를 낳았다> 김수미< 인생 오후 그리고 꿈>, 홍원기 <전설의 달밤> 김민정 <하나꼬>로 이어졌고 130권 단행본은 정민찬 작가의 <벚꽃 피는 집> 이였다. 올해 선정된 30인의 한국 극작가 명작 희곡선은 노경식 <반민특위>, 장일홍<이어도로 간 비바리>, 김나정<저마다의 천사> 최원석 <빌미> 최원종 <두더지의 태양> 국민성<아지매 로맨스> 한민규 <사라져가는 잔상들>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4개 국어로 번역된 극작가 이강백의 희곡집을 비롯해 극작가 노경식, 이근삼의 번역본, 카자흐스탄과의 국제교류를 통해 출간한 한국 단막극 러시아어 편 등도 출판하면서 제6회 대한민국 극작 엑스포'희곡마켓은 국내외 한국희곡의 대중화를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
개막식에는 작가 선욱현, 홍원기, 안희철 이사장(한국 극작가협회), 이홍기(대구연극협회 회장), 심재민(연극평론가), 최현묵(희곡작가, 달서문화재단 상임이사)가 참석했다. 선욱현 작가는 다섯 번째 희곡집<아버지 이가 하얗다>을 들고 왔는데 희곡집 표지에 실린 그의 얼굴은 아버지 이가 유독 하얗게 보이는 것처럼, 갇힌 갱도에서도 살아남은 광부의 표정을 닮아있었다. 희곡집은 강원도 광부의 마음이 돼버린 작가가 태백, 정선, 영월, 삼척을 누비며 광부의 삶을 읽기 위해 폐광 갱도 탄광촌을 취재하며 쓴 희곡이다. 70, 80년대 희곡 중에는 광부들의 고된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탄광 매몰로 막장에 갇힌 광부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故 윤 조병 선생의 <모닥불 아침이슬>이 떠오른다. 윤대성의 <출세기>는 갱도에 갇힌 극 중 인물 김창호의 첫 장면의 대사가 생생하다. 강릉 경포대가 고향으로 알려진 조선 중기 여류시인 <허난설헌>이야기는 강원도립극단 창단 공연작품이 되었고 <바나나>는 침팬지들의 집단 사회 특성을 실험한 책을 읽고 쓴 희곡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원숭이처럼 바나나를 좋아하고 물을 싫어하는 한 연구소의 치료제 개발한다는 이야기이다. <엄브렐러>는 작가의 초등학교 경험을 녹여냈고 <엄브렐러, 그 후>는 초등학생들의 20년 후의 이야기다.<화평시장 CCTV>는 양동시장, 대인시장, 말바우시장, 남광주 시장 등 광주지역 전통시장으로 취재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완성한 장막이다.
'화평시장'은 50년 가까이 된 화평전통시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암전이 없고 관객은 이들 시장의 삶은 CCTV처럼 바라보는 구조다. 선욱현은 작가적 상상만 덜어내면 천상 배우다. 예술감독, 작가, 연출, 배우 등 철인 4종 경기를 마스터한 겸손함을 희곡마켓 로비에서 보여주었다. 한국희곡명작선이 도서출판 평민사를 통해 160권의 단행본 희곡을 발굴했다는 의미도 크지만 번역된 희곡으로 세계무대로 전진하는 초석(礎石)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안희철 이사장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과 한국극작가 협회는 중장기로 번역과 공연사업을 추진하며 '세계극작엑스포' 도약을 위해 전시, 공연, 아카이빙, 국내외 명작희곡발간, 희곡 국제교류와 공연 등으로 k-극작을, 세계화 하겠다는 방침이다.
◆극작가 엄인희 다시 읽기,
한국연극예술학회(회장 심재민)의 '극작가 엄인희 다시 읽기'에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주제 세미나가 개최되어 높은 관심을 이끌었다. 양세라 교수는 엄인희 극작술 연구를 위한 시도 <부유도>(1981), < 저수지>(1981)를 중심으로 엄인희 희곡의 극작술을 통해 작가의 시대 인식과 사회에 대한 인식(정서)을 분석했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부유도>(1982, 강영걸 연출, 극단 민예)는 '녹두'라는 극 중 인물이 자신을 희생해 마을 사람들의 식인(食人) 풍습으로 상징되는 우화 극이다. 양세라 교수는"이 우화 극은 작가가 전하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동제의 상황에서 열림 굿을 표방한 극작술이 분명한 극이다."며 "희곡구조는 서사극의 극작술을 볼 수 있는 희곡"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극은 프롤로그(서막)를 통해 이 연극이 대동 제의임을 관객에게 알리며 시작하는 극형식이다.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들어오면, 관객석에 자리 잡은 악사 석에 말을 걸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은 마을 이장이 되어 나오며 마을굿의 분위기와 상황을 무대화하며 공연은 시작된다. 이러한 극적 상황이 극장의 자연 상황과 관계를 맺는 희곡구조로 다양한 극 중 극을 내포하고 있다. 극 중 극은 마을에서 녹두 역할을 맡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장역할을 맡은 관객을 제상에 앞세우고 잔을 따르고 절을 하며 동시에 제의가 수행되는 극 중국 형식에서 서사극의 특징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양세라)
198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저수지>(극단 민예, 민예소극장, 1983)는 실제 극장에 집을 지으면서 공연을 했던 작품이다. 실내 공연극장에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짓는 사실적인 재현을 보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두 인물이 플라스틱으로 집을 짓고 허는 두 장면을 통해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과 행동을 상징하듯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집을 짓고 허무는 일의 반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고 있으면서도 문제 제기만을 하는 인간의 좌충우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세라 교수는 엄인희 초창기 희곡 두 작품을 관통하는 극작술은 꼭두각시 인형극(놀음)의 연행성과 담론의 실천방식을 응용하여 희곡을 창작한 점을 들었다. 당대 사회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질서와 기성 연극계의 권위적 환경에 대응하여 우화극 <부유도>, 부조리한 일상의 쓸쓸하고 섬뜩한 부조리극 <저수지>를 통해 시대에 대한 인식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론자 우수진 (연극평론가)'는 "두 작품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형식 실험 안에 작가의 시대 인식이 부재성 보다'은폐'되어 있었다"라고 내다봤다. <저수지>는 꼭두각시놀음의 절 짓고 허무는 장면은 부조리에 가까울 만큼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사회 안에서 동성애나 여성주의, 늙음과 죽음, 애도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지니 연극평론가(한경국립대 교수)는 극작가 엄인희와 1990년대의 페미니즘 주제로 영화 <결혼이야기2>(1994),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1998)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특히 "1990년대는 페미니즘 연극과 영화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가운데 엄인희 극작 세계가 갖는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지니 평론가는 "엄인희의 영화 작업은 1990년대 이후 한국에 페미니즘 관련 논의가 도입되면서 가정 내 여성의 영역과 역할을 재평가하고, 가부장제의 문제성에 대해 성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던 시점에서 문화계의 지형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라며 "엄인희는 연극 활동을 통해 젠더와 노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두 편의 영화가 달라지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의 자의식과 가정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해 살피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엄인희 작가를 통해 1990년대 연극과 영화계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된 여성, 페미니즘이라는 화두와 관련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이름(엄인희)이라는 점에서, 영화 작업의 공과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며 토론 발제를 이어갔다.
김윤미 작가(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는 페미니스트 여성 극작가 첫 세대인 엄인희 작가를 통해 엄인희 희곡에 나타난 '여성의 몸과 여성 주체'라는 주제로 희곡 <비밀을 말해줄까?>를 대상으로 마지막 발제를 마련했다. '자궁'을 사유한다는 것 ▲ 페미니스트 여성 극작가 첫 세대 엄인희 ▲<비밀을 말해줄까?> 의 비밀에 대하여 등으로 이루어진 연구에 대해 토론자 김정숙(공연이론가)은 "이제까지 발화되지 못했던 문학적 소재인 '자궁'과 여성의'생리 전 증후군'이 서사 담화 되는 것이 놀라웠고, 신선했다고 평가"하며 "자궁을 가졌다는 이유로, 언제나 다시 귀환하는 고통을 평생 끌고 다녀야 했던 한 여성으로서 깊이 공감하는 이야기였다."라고 진단했다. 올해 '그때 그 연극, 故 엄인희 展'은 희곡전시, 작가 세계 세미나, 낭독공연으로 이어지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심층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낭독공연으로 진행된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1998)은 남편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여성 유경자, 그리고 회사를 변호하는 명변호사, 두 사람의 다툼을 지켜보고 판결하는 오 판사 등 세 명의 인물이 끌어가는 이야기다. 원작은 부부간 성생활에 대한 유경자의 신념, 자녀의 성교육에 대한 진보적인 태도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정을 무대로 모든 사건이 전개되면서 섹스에 대한 유경자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이 드러나고, 이와 대비되는 두 명의 남성 지식인(명변호사, 오 판사)의 태도가 대비되면서 작품 속 코미디 효과를 구축한다. 극은 유경자라는 평범한 중년 여성을 내세워 변화하는 사회와 달라지는 성 관념 속 여성의 성욕을 가시화하고 있다(전지니). 배우들의 안정되고 소화력 있는 연기로 35년 전 작가 엄인희의 희곡은 지금 읽고, 들어도 한국 사회 여성 자유 해방운동에 영향을 미친 엄인희 작가의 고단한 투쟁이 느껴지면서도 작가가 추구한 희곡의 언어는 동시대를 향해 여전히 살아있었다.
◆극작가 이근삼 희곡의 풍자 세계와 희곡 있사옵니다.
1일 차 극작 엑스포가 엄인희 전으로 채워졌다면 2일 차는 고 이근삼 작가의 작품세계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극작가 이근삼의 풍자 세계'에 대한 연구발제자로 나선 고려대학교 홍창수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제강점기의 송영, 해방 전후 작가 오영진의 뒤를 이어 1960년대부터 풍자적인 희극을 창작함으로써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예각화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홍 교수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상과 이념으로부터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6, 25전쟁과 4, 19혁명을 겪은 작가는 이념의 전체주의적 폭력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의식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정치 우화 극<아벨라의 재판>은 6, 25 전쟁 후 북한에서 실시한 반동분자를 숙청하는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2천 년 전 왕국을 무대 배경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어리석은 대왕을 조롱하고 풍자하고 있는 <大王은 죽기를 거부했다>(1961)는 4,19 한 달 전에 발표한 희곡으로 민주화 운동 직전의 정치 상황과 관련성이 짐작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제18공화국>(1965)에서 극 중 19공화국의 등장은 한국 정치사에서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쟁취한 제3공화국의 정통성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시사성이 담겨있다고 내다본 점이 흥미로웠다. "이 작품이 1965년에 창작되었다는 사실로도 작가의 정치 비판적 성향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풍자극에서 풍자 대상은 대왕, 여왕, 경호부장, 재판장, 검사. 변호사. 정치인, 총리, 장관 등으로서 사회에서 권력이나 기득권을 소유한 자들로 작가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직위에 걸맞게 권위나 위엄이 스스로 실추되게 희화화하여 그들을 풍자하고 있다. 작가의 알레고리적 세계 속에 담아내려는 정치 현실은 거짓, 허위, 모순, 비리, 부패, 타락 등으로 의미화되어 풍자되고 있는 위반된 세계의 총체적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근삼 희극정신은 무대 실험 정신과 견고하게 맞물려 있다"라며"작품에는 서사적 요소가 편재되어 있으나 서사극 수용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법들이 공존하고 있고, 비판의 다양성은 일상생활에서부터 국가 권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라고 작품세계를 분석하고 있다. <애견기>(작, 이근삼 연출, 김정근) 은 1992년에 희곡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이례적으로 공연무대에서는 미발표된 희곡이다. 극 중 인물이 견공(犬公)이 되어가는 작가의 시선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이근삼 작가의 풍자적인 우화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신주의에 타락되어가는 인간들의 속물성을 우화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육신과 언어가 개의 형태로 변해가는 형상화를 통해 자본과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개만도 못한 인간과 사회구조를 조롱하고 있다.
홍창수 교수가 지적한 대로 이 작품에는 현실의 모순들이 충돌되는 현상을 풍자 우화 극으로써 자본가와 속물 인간들의 총체적인 타락상을 이근삼 작가의 특유한 웃음 코드로 드러내고 있다. 돌아보면, 이 작품이 미발표 공연으로 남게 된 것은 90년대 초반 언어연극이 공연에 주류를 형성하던 시대에 극 중 인물들이 개로 의인화되는 표현방식이 다소 낯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공연예술제작소 비상을 통해 낭독공연으로 진행된 공연을 통해 작품은 현재에 희곡처럼 매우 세련된 플롯 구조와 작가적 설정을 보이기에 현시대 공연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연극적인 상상과 연출적인 영감을 자극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연에서 배우들은 입체감 있는 전달과 일부 장면을 세밀하게 구현함으로써 무대공연 이상의 감각적인 효과를 주었다. 홍원기 작가 사회와 낭독공연에 참여한 배우들과 함께 이어진 '故 이근삼 극작가를 이야기하다.' 토크쇼에서 배우들은 낭독공연과정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애견기>는 배우들한테도 다양한 연기적인 접근을 요구할 수 있는 작품이고, 30년 전의 작품인데도 지금의 현실로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풍자 우화의 맛이 제대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유정 씨는 "당시 대학 연극반에만 공연이 된 작품이지만 무대를 통해 발표 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3일간의 '대한민국극작엑스포', '세계인의 K-극작 엑스포로',
3일 차 마지막 프로그램은 시민참여 낭독공연과 신진작가 프리뷰 낭독공연으로 <불우이웃돕기>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극작가협회에서 극작 아카데미를 통해 발굴된 신진작가 희곡이다. 비정규직, 영 끌 아파트, 결혼과 출산 포기, 혼족과 코인 세대로 불우하게 살아가는 N포 세대 청년들의 생존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는 희곡이다. '1592 이순신' 주제로 진행된 극작가를 위한 인문학 특강은 임진왜란의 역사적 배경과 전란(戰亂)을 극복한 이순신과 의병, 민초들의 활약등을 일본군의 마닐라 함락(1942), 1592(임진왜란) 7년 전쟁과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다루고 있는 특강을 통해 작가들에게 다양한 역사적 영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극작엑스포는 안정된 프로그램을 더해 한국극작가 명예의 전당, 한국희곡작가의 체험방, 희곡마켓 수록 작가와의 릴레이 토크와 사인회, 청소년희곡 쓰기 대회, 교과서 수록 희곡 낭독공연, 작고 문인들의 희곡 세계를 입체적으로 압축하여 보관해 관람자들한테 희곡을 친근한데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6회 대한민국극작엑스포 3일간 프로그램은 공연, 희곡발굴과 낭독공연 그리고 작고 문인 그때 그 연극과 극작가 엄인희 다시 읽기 세미나까지 한국 극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극작가들의 대표적인 축제였다. 축제를 준비한 한국극작가협회 소속 극작가, 배우, 연출가와 극단, 연극평론가와 공연연구자들이 함께한 3일간의 여정은 축제의 슬로건 K-극작, 세계인의극으로!'처럼 세계의 희곡과 극작가, 공연예술가와 연구자들이 희곡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축제라는 점에서 세계 국문학축제의 토양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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