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2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중난하이(中南海) 회동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클린턴 장관이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강연에서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를 강조한 데 대해 원자바오 총리가 '휴수공진'(携手共進‧두 손 마주 잡고 함께 가자)이라고 화답하면서다. '손자병법' 구절을 인용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한 국제 문제에 공동 대처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장면이다.
#죽(竹)의 장막을 걷어 올린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만남은 더욱 극적이다. 국공(國共) 내전 재개와 6·25전쟁을 치르면서 냉랭해진 두 나라는 탁구를 고리로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한 해 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31회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중국 선수단이 미국 선수단에 상호 교류를 제안했고, 미국이 동의하면서 베이징 탁구 대결이 성사됐다. 이른바 핑퐁 외교였고, 마침내 수교(修交)라는 결실을 낳았다.
손자병법과 핑퐁을 소환한 건 한국 팬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푸바오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출국을 앞두고 있어서다. 이 앙증맞은 판다는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보낸 러바오와 아이바오 2세다. 시 주석의 바람대로 푸바오는 중국 외교관이 해내지 못한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했다. 2021년 1월 4일부터 푸바오는 1천155일 동안 550만 명의 관람객을 만나 기쁨과 감동을 선물했다. 공개 마지막 날인 3일에는 관람객이 새벽 3시 반부터 대기했고, 취재진만 수십 명이 몰렸다.
그러는 사이 한중 관계는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다. 무언가 대화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1월 취임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하기까지 27일이 걸렸다. 통상 취임 1주일 내 이뤄지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라 할 만큼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특히 왕 부장은 2024년 중국 외교정책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연내 개최를 목표로 했던 한중일 정상회담도 물 건너갔다. 당분간 한중 관계가 훈풍을 타기 어려워 보이는 방증이다.
한국 재계 대표단의 중국 방문이 임박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경총을 중심으로 꾸린 재계 대표단 방중(訪中)은 기업인 간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와 중국국제다국적기업촉진회 공동 주최로 두 나라를 오가며 한중 CEO 라운드 테이블을 열어 왔지만 '사드' 사태로 잠정 중단된 데 이어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중국행을 계기로 향후 양국 간 교류가 활성화된다면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된다.
가뜩이나 한중은 공급망에서부터 북핵 등 공통의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미중 전략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돌파구가 절실한 우리로선 중국과의 갈등을 관리하며 소통과 대화로 실타래를 풀어 가는 게 한 방법이다. 중국 외교가 과거에 드물지 않게 보여준 여유나 파격이 사라진 대목은 아쉽다. 푸바오가 만들어 낸 호감의 시간을 모멘텀으로 삼으면 안 될까. 시 주석은 푸바오의 한중 우호 정신을 복기(復棋)했으면 한다. 여기에 조태열 장관과의 통화에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한 왕 부장이 그 말을 구체화한다면 해법을 찾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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