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소방관 순직 후 남겨진 두 고양이…이들은 어디로 가나

입력 2024-03-06 13:24:39 수정 2024-03-06 18:34:43

남겨진 동물 구조 '팅커벨 프로젝트'
순직한 故박수훈 소방교 고양이들…입양센터 통해 평생 집사 만날 준비
안락사 앞둔 '팅커벨' 구조 계기로 11년째 2천500마리에 주인 찾아줘

지난 1월 31일 오후. 흰둥이와 두부는 여느 때처럼 집사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홀로 사는 집사를 반기는 일은 두 고양이의 기쁨이자 즐거움이었으므로. 하지만 집사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에도 늦은 밤에도,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까지도. 두 고양이는 영문도 모른 채 하염 없이 집사를 기다렸을 테다. 그것이 영이별인 줄 모르는 채로.

집사 이름은 경북 문경 소방서의 고(故) 박수훈(35) 소방교. 험지 근무를 자처했을 만큼 사명감이 투철했다. 그날 오후 그는 문경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 있었다.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말에 주저 없이 화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1일 경북 문경시의 한 장례식장에 순직 소방관 박수훈(35) 소방사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연합뉴스
1일 경북 문경시의 한 장례식장에 순직 소방관 박수훈(35) 소방사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연합뉴스
새끼 떄 데려와 5살이 될 때까지 동고동락했던 고 박수훈 소방교와 두 고양이 두부(위쪽)와 흰둥이(아래쪽). 2018년 9월 처음 데려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고 박수훈 소방교 SNS
새끼 떄 데려와 5살이 될 때까지 동고동락했던 고 박수훈 소방교와 두 고양이 두부(위쪽)와 흰둥이(아래쪽). 2018년 9월 처음 데려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고 박수훈 소방교 SNS

◆고 박수훈 소방교가 남긴 '두부'와 '흰둥이'

"고 박수훈 소방관님이 키우던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 팅커벨에서 돌보다 입양을 보내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왔어요"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는 설 연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활동하는 동물보호활동가였다. 황 대표는 곧장 경북 상주로 내려갔다. 고 박수훈 소방교가 순직한 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아들이 살아 있을 때야 고양이를 맡아주곤 했었지만, 이제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아들이 생각나서 너무 슬퍼 견딜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고인의 부모님께서 정말 많이 죄송하다며 고양이들을 부탁셨어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황 대표는 박 소방교의 부모님께 깊은 애도를 전했다. 또한 좋은 주인을 찾아 주겠다는 약속과 고양이가 보고 싶을때 언제라도 연락을 달라는 말도 거듭 전했다.

두부와 흰둥이를 돌보고 있는 팅커벨 입양센터 고양이방. 뒤에 문 안에 작은방, 앞에 보이는 것은 큰방. 두부와 흰둥이는 현재 작은 방에 있고 조만간 다른 고양이들과 합사 할 예정이다.
두부와 흰둥이를 돌보고 있는 팅커벨 입양센터 고양이방. 뒤에 문 안에 작은방, 앞에 보이는 것은 큰방. 두부와 흰둥이는 현재 작은 방에 있고 조만간 다른 고양이들과 합사 할 예정이다.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적응 중인 흰둥이(위)와 두부(아래). 고 박수훈 소방교의 생전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고양이들은 수월하게 적응하고 있다.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적응 중인 흰둥이(위)와 두부(아래). 고 박수훈 소방교의 생전 살뜰한 보살핌 덕분에 고양이들은 수월하게 적응하고 있다.

팅커벨 입양센터엔 보호 가능한 고양이가 8마리. 마침 노묘 두 마리가 집중 케어가 필요해 빠진 터라 여분 공간이 있었다. 우선 팅커벨 연계 병원에서 흰둥이와 두부의 건강검진을 했다. "중성화도 잘 돼 있고 영양 상태도 좋았어요. 고인께서 얼마나 잘 돌봤는지 보자마자 알겠더라고요" 흰둥이와 두부는 팅커벨입양센터로 옮겨져 다른 고양이들과 합사 전 분리된 방에서 적응 기간을 거쳤다. "평소 고인과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있었고요. 처음에는 경계하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냄새도 맡고, 스크래처를 긁기도 하고 잘 적응하더라고요"

흰둥이와 두부는 한 달째 입양센터에서 지내는 중이다. "입양 신청자가 있기는 한데 두 아이같이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입양을 보내고 싶어서 지금 여러 방도로 상담 중입니다. 반드시 책임지고 좋은 가족을 만나도록 할 것입니다. 두부와 흰둥이에게 평생 집사를 찾아주는 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다 돌아가신 소방관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일 테니 말이죠"

◆ 남겨진 동물 구하는 '팅커벨 프로젝트'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13년. 황 대표는 시 보호소에서 안락사가 코앞인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리고 강아지에게는 '팅커벨'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팅커벨은 이미 보호소에서 파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 치료를 위해 모금을 했고 하루만에 112만원이라는 큰 돈이 모였다.

하지만 팅커벨은 치료도 못 해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팅커벨 화장을 하고 남은 돈은 92만원. 모금으로 모아졌기에 돈을 돌려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92만원을 다 쓸때까지만 동물을 구조하고 좋은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 '팅커벨 프로젝트'. 그리고 팅커벨프로젝트는 11년째 2500마리를 구조하고 입양을 보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주인이 책임지지 못해 홀로 남겨진 반려동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키우던 주인이 암으로 장기 투병하면서 포기한 후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돌보다 입양보낸 찰리, 키우던 주인이 감옥에 가게 돼 포기한 후 구조해온 덕구, 독거노인과 살다가 남겨진 몽실이와 미미.
피치못할 사정으로 주인이 책임지지 못해 홀로 남겨진 반려동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키우던 주인이 암으로 장기 투병하면서 포기한 후 팅커벨 입양센터에서 돌보다 입양보낸 찰리, 키우던 주인이 감옥에 가게 돼 포기한 후 구조해온 덕구, 독거노인과 살다가 남겨진 몽실이와 미미.

"흰둥이와 두부처럼 피치못할 사정으로 주인이 반려동물을 보살피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몽실이와 미미는 독거노인이 키우던 강아지었다. 독거노인이 하늘나라로 가게 되며 보호소에 보내졌고, 안락사를 코 앞에 두고 팅커벨 입양센터로 오게 됐다. "보호자가 암 같은 중병에 걸려 오게 되는 친구들도 있어요. 보호자가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게 되면 도저히 여력이 없는 거죠. 집에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됐든 아픈 사람 간병이 먼저니 반려동물들은 홀로 집에 방치되는 겁니다"

동물단체로 옮겨지게 되면 다행이지만 보호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안락사에 처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남겨진 아이들은 다행이게도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 있어요. 주인의 학대나 의도적 방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입양센터에도 적응을 잘 하고, 또 주인을 만나는 과정도 꽤 수월합니다"

주인이 범죄를 저질러 감옥을 가는 바람에 혼자 남겨진 강아지도 있다. 덕구는 주인이 감옥에 가게 되면서 집에서 굶고 있다 발견된 사례다. "그래서 저희가 감옥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해서 포기 의사를 받아냈습니다. 이후 덕구를 보살피다 지금은 좋은 가정으로 입양을 갔습니다"

◆남겨진 동물 위한 다양한 처방 속속

정서적 안정이 돼 있다 하더라도 주인을 잃었다는 슬픔은 매한가지다. 동물행동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잃은 주인이 겪는 '펫로스증후군'처럼 반려동물도 주인을 잃을 때 트라우마를 겪는다고 한다. 전문가 김 씨는 "오랜기간 함께 지내던 주인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동물들도 이를 다 인식하고 슬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러한 슬픔이나 충격을 완화하는 지속적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팅커벨 프로젝트의 입양 전 적응 프로그램은 이러한 반려동물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맞닿아 있다. 황 대표는 "대부분의 유기견들은 의외로 금방 적응해서 잘 지냅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반려견행동교정사에게 의뢰를 해서 치유를 합니다"라고 말했다.

피치못할 사정을 대비할 수 있는 금융 상품도 눈길을 끈다. '가족의 일원인 반려동물'에게 유산 상속을 할 수 있는 펫 신탁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는 것. 펫 신탁 상품은 '유언대용신탁'을 응용한 것이다. 이는 반려인(위탁자 겸 생전수익자)이 사망해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본인 사망 후에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부양자(사후수익자)에게 반려동물의 보호·관리를 위한 필요 자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상품이다.

반려인이 생전 신탁 계약을 통해 믿을 만한 사람을 지정해 두면 후에 반려인의 건강이 악화하거나 의사소통이 제한됐을 때 지정한 사람이 반려동물을 돌봐주거나, 입양기관을 통해 새로운 반려인을 찾도록 할 수 있다.

한날 한시 세상을 떠나면 좋겠지만,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오랫동안 떠난 사람을 그리워 해야 할 테다. 팅커벨 프로젝트 황 대표와의 마지막 대화가 귓가에 맴돈다. "고 박수훈 소방교도 분명 떠날 때 집에 남겨질 두 고양이들을 걱정했을 겁니다. 남겨진 사람만 슬픈 게 아니라는 거죠. 그 떠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히 해 주고 싶은 게 우리 단체의 또 다른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