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총을 비롯해 대포와 같은 무기의 소리를 사용하는 클래식 음악 중에는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서곡'이나 프로코피예프의 '10월 혁명 20주년을 위한 칸타타'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이다.
이 작품은 1812년에 러시아군이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고자 차이콥스키에게 의뢰된 것으로, 그는 극적 효과를 위해 마지막 부분에 진짜 대포와 연주장으로 예정된 모스크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종을 사용하도록 했다. 포탄은 의도된 시간에 정확히 발사되도록 전기 스위치 장치로 작동되도록 했지만, 1882년에 있었던 초연에서 종과 실제 대포의 사용은 무산됐다. 대성당은 그때까지도 완공되지 않았고, 전기 장치도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실용적인 문제로 진짜 대포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보통 공연에서 생략하거나 공기총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1916년에 런던에서 있었던 이 서곡의 최초 녹음에서도 대포를 사용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의 의도가 완전히 실현된 것은 1950년대였다. 1954년에 미니애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안탈 도라티의 지휘로 '1812년 서곡'을 녹음했는데, 작곡자의 의도대로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실제로 발사한 1755년식 프랑스산 총구 장전식 대포 소리와 리버사이드 교회의 카리용(건반을 눌러서 연결된 여러 개의 종을 울리는 악기) 소리를 따로 녹음해 오케스트라 연주에 더빙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스테레오 녹음과 편집 기술의 발달로 녹음된 대포 소리가 실내 공연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전에 진짜 대포를 사용해 이 작품을 실시간으로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1940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의해서다. 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었던 유진 오먼디는 필라델피아의 유명 야외공연장인 로빈 후드 델 센터의 시즌 개막을 성대하게 하려고 '1812년 서곡'을 선택하고, 펜실베니아 주 방위군의 도움을 받아 공연에서 실제로 포탄을 발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미국 음악가 노동조합의 필라델피아 지부에서 대포가 악기로 쓰이므로 음악가가 대포를 조작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델 센터는 노조의 요구대로 포탄을 발사할 연주자를 선발하는 오디션을 열었다고 한다. 이 오디션에서, 콘서트 포병으로 필라델피아 출신의 호른 연주자로서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던 찰스 레미쉬가 뽑혔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명목상인 것으로, 실제로는 포탄을 발사하지 않았다. 대신에 콘서트를 위해 연주장 인근 스쿨킬강 둑에 37㎜ 대전차포 한 쌍을 배치한 주 방위군 제111보병사단 포병분대가, 멀리서 부지휘자인 실반 레빈이 보내는 손전등 신호에 따라 레미쉬가 지시하면, 공포탄을 발사했다. 포탄 발사가 5초 간격으로 이루어져 차이콥스키의 의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1990년이 돼서야 '1812년 서곡'의 공연에 진짜 대포가 사용됐는데, 차이콥스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레닌그라드(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였다. 이때 16문의 총구 장전식 대포가 사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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