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무장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이 일본의 '군사대국화' 운운하면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재무장은 대한민국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최근의 역사를 보자.
1950년 6월 22일, 6·25전쟁이 발발하기 3일 전 존 포스터 덜레스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도쿄를 방문하여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난다. 방문의 목적은 제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킬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이었다. 덜레스가 제시한 조건 중에는 일본의 재무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1945년 미국이 일본을 점령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 채택해 온 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을 점령한 후 일본의 중화학공업 기반을 파괴한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일본을 당시 스위스와 같은 낙농국으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목표였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일본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소련과 중공이 유라시아 대륙을 공산화하고 한반도의 북부까지 공산주의가 잠식하자 미국은 일본이라도 공산주의로부터 지키고자 일본을 다시 산업화시키고 재무장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요시다는 덜레스의 재무장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덜레스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도쿄를 다시 한번 방문한다. 일본의 재무장을 재차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전황은 대한민국과 미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을 넘어 북진하고 있던 한국군과 미군, 유엔군은 10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붕괴하면서 패퇴하고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미군과 한국군, 유엔군 병사들이 한국과 일본의 공산화를 막기 위하여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단 한 명의 병사도 참전시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을 재무장시킴으로써 '일본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일은 미국으로서는 시급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시다는 미국의 일본 재무장 요구를 끝내 거부한다. 그는 만일 일본이 재무장을 하면 지하로 숨어들었던 군국주의자들이 다시 준동할 것이며, 또한 경제적으로 막대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가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평화헌법 제9조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일본국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요시다가 일본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일본 경제는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한다. 일본이 항복한 다음 해인 1946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4%였다. 패전과 탈산업화 전쟁의 여파였다. 그러나 1947년 일본 경제는 4.51%, 1948년에는 7.91% 성장하고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는 무려 15.9% 성장한다. 요시다가 총리직을 사임한 1954년에 이르면 일본 경제는 1960년대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경제, 정치, 안보 조건을 모두 갖춘다.
한편 일본은 미국의 재무장 요구를 끝내 거절함으로써 일본의 젊은 군인들을 6·25전쟁에 공식적으로 단 한 명도 보내지 않는다. 일본을 지켜주기 위해서 대한민국과 미국, 유엔 참전국들의 젊은이들이 수없이 피를 흘리지만 정작 일본은 단 한 방울의 피도 안 흘린다. 그 대신 미국이 막대한 양의 전쟁 물자를 일본에서 생산하기 시작하고 자유 진영의 군사들이 일본을 후방 기지로 사용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철저하게 파괴되었던 일본 경제는 기사회생한다.
한국의 반일주의자들은 일본군이 한반도에 다시는 발을 딛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민족감정'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군사적 기여는 하나도 안 하고 전쟁이 가져온 경제 특수는 온전히 다 누리면서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국가안보와 외교는 설익은 '민족감정'을 기반으로 했을 때 실패한다. 일본의 재무장이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고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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