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반군이 홍해 남쪽 예멘 앞바다에서 미사일로 민간 선박을 공격했다. 글로벌 해상교통로가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홍해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바다로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가 작전 중인 아덴만과도 연결되어 있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38도선으로 가로막혀 대륙으로 나아갈 수 없다. 사실상 일본과 같은 섬나라이자 해양 국가인 셈이다. 우리 수출입의 대부분은 해상 수송이 담당한다. 교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해상교통로의 안전한 확보를 반드시 구축해야만 한다. 바다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해상교통로(SLOCs: Sea Lane of Communications)는 국가의 생존과 전쟁 수행상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해상 연락 교통망이다. 해상교통로가 경제‧자원‧산업 영역의 안전망을 포괄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입지는 매우 취약하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해상교통로는 우리 경제와 생존을 좌우하는 절대적 생명선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총생산량의 84%를 무역에 의존하고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을 통해 운반한다.
식량 수입의 75%와 원유 수입의 100%가 해외에서 도입된다. 우리의 해상교통로가 차단된다면 하루에 5조5천억원의 피해와 1만6천 명의 고용 감소가 초래된다. 이는 해상교통로 확보 문제가 단순히 운송의 의미를 넘는 국가 존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해상무역에 의존하는 국가이면서도 그동안 해상교통로 보호에 무관심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해양 국가지만 정책적으로 반도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로 휴전선 방어에 몰입하여 지상전 위주의 전쟁 개념에 집중했다. 해군도 북한 간첩선이나 고속정의 기습을 저지하는 데 몰두했고,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더욱 연안 해군을 강요받았다. 이로써 해군의 기본적인 임무인 해상교통로 보호나 확보는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 대양해군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리 한미동맹이 굳건하더라도 수출입 상선의 보호를 언제까지나 미군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만해협의 긴장과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군이 지금처럼 우호적이리란 믿음도 애매해졌다. 우리도 G10 국가에 걸맞은 해군력으로 해상교통로 확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합당한 책임과 공헌을 해야 한다.
필자는 1988년, 1함대 기함이던 울산함의 항해 장교였다. 동해의 검푸른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한미 해군의 태권도 훈련에서 자적(自適)하던 미군의 순양함(1만5천t)과 달리 울산함(1천900t)은 추풍낙엽 신세였다. 가난한 나라의 청년 해군 사관은 함(艦)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의 위협에 스스로 연민을 삼켜야 했다. 이제 우리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과 잠수함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양해군으로서 가져야 할 항공모함이 없다. 원거리 작전과 해상교통로 보호에 필요한 플랫폼 역할을 감당할 항공모함은 대한민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해군 승조원의 안전과 사기 그리고 전투력 창출에 꼭 필요한 해상전력이다. 해상에서의 분쟁을 억제‧제거하기 위해서 정치, 경제, 외교적 방안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불가피한 경우라면 대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은 해군력뿐이다.
해상교통로는 21세기 신실크로드이다. 해군은 AI 시대를 맞아 첨단 유무인 복합체계로 하루빨리 대양해군으로 도약해야 한다. 국가 생존과 관련된 해상교통로 보호와 확보를 기필코 완수해야 한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해군 참모총장의 건의를 듣고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4천500t), 세종대왕급 이지스함(7천600t), 독도함(1만5천t), 214급 잠수함(1천800t) 건설을 지시했다. 그때 만들어진 함정들이 현재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작전을 수행하는 청해부대이다.
해군력 건설은 설계, 건조, 시험 평가, 전력화 등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사업이다. 오늘 당장 시작한다고 해도 2035년에나 해상작전에 투입할 수 있다. 해상교통로의 위협은 평소에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바다를 지켜야 강토가 있다. 해군의 힘이 대한민국의 미래라면, 우리 해군은 대양해군의 임무를 기필코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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