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주제 다르게 구현, 통념 깨고 돌아보게해
본질에 대한 질문…다음달 2일까지
드넓은 바다 위,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는 부표를 상상해보라. 망망대해에서 이정표가 되거나 특정한 영역을 표시하거나, 때로는 위험한 지점을 알리기 위해 떠있는 부표들.
최기창 작가의 개인전 'Buoys: 부표들'은 그의 2009년 작업부터 가장 최근 작업까지 돌아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가 만들어온 세계의 영역을 표지하는 일종의 부표인 셈이다.
권태현 미술비평가는 특히 견고하면서도 물에 떠있기 위해 세심하게 조정된 밀도를 지닌 부표의 속성을 통해 그의 작품을 얘기한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의도된 가벼움을 유지하는, 고정되기 위해 움직이는 역설을 통해 그의 작업 방법을 유비해볼 수 있다는 것.
작가의 의도된 가벼움은 전시장 1층의 전면 창 전체를 뒤덮은 반짝이는 시트지 작품 '더, 한 번 더, 그걸로는 충분치않아'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그는 국가, 군가, 유행가, 찬송가 등 약 1천500곡에서 추출한 사랑에 대한 가사를 프린팅해 뒤덮었다. 가벼운, 혹은 평면적인 사랑 이야기를 강박적으로 늘어놓아 세상이 사랑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사랑이라는 근원적인 개념을 돌아보게 한다. 마치 부표처럼, 가벼워보이는 대상의 밀도를 세심하게 조정해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 설치된 그의 초기작 '반달' 역시 반이 잘린 구 형태의 달 이미지를 통해 학습된 이미지와 언어의 구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실없는 농담처럼 보이지만, 가벼움들이 응축돼 파열된 힘은 꽤 극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의 '피에타' 작품은 미술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표라고 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그대로 반복한다. 작가는 높이 2m 넘는 크기로 확대한 피에타 이미지를 녹이 슨 철판에 120개 조각으로 분절해 나타낸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망점이 그대로 드러나, 우리가 평소 접하는 이미지를 다시 인식하게 한다.
특히 실제하는 조각, 물질로서의 피에타가 아닌, 미술사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수없이 유통됐을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둘러싼 우리의 선입견과 서양 중심 미술사라는 체제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외에도 전시장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그대로 받아들인 '순환하는 밤', '슈퍼스타더스트'와 같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권 미술비평가는 "최 작가는 화면을 엄격하게 조정하기 보다는 일부러 통제할 수 없는 구석을 만들고 그것과 협의를 해나가는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며 "단단한 땅을 딛고 자신이 정한 어딘가로 향하는 것보다, 부표처럼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액체에 몸을 맡기면서도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궤적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갤러리CNK(대구 중구 이천로 206)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는 2월 2일까지 이어진다. 053-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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