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나무 늘어선 신작로 옆으로 까마득한 비탈밭. 저 높은 산 허리까지 살뜰이도 일궜습니다. 망건 쓴 촌로가 분뇨 거름을 내는 여긴 어디며, 무슨 사연으로 이 험한 산중에 터를 잡았을까요?
기약 없이 또 신문을 훑었습니다. "남한 인구는 2천6백48만명. 식량은 연 3천8백58만석이 필요한데 생산량은 2천4백47만석뿐. 천4백11만석이 부족하다. 해방 후 18년 동안 주력해온 중농정책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1964년 6월 19일자 매일신문)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원조로 보릿고개를 넘던 이 무렵, 식량 증산만이 살길이었습니다. 정부는 농업근대화, 경북에선 1964년 '약진경북(躍進慶北)'을 내걸었습니다. 핵심 과제는 경지확장과 경지정리. 농토를 넓히고 면적 당 생산량을 높여 증산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경지확장 대상은 국토의 73%에 이르는 산. 경사도 30도 미만 산지를 골라 대대적 개간이 시작됐습니다. 시·군별, 면별로 지정한 개간지에서 층층으로 축대를 쌓고 전답을 만들었습니다. 첫해 개간 실적은 5천5백22정보(5,476ha). 목표량 5천5백정보를 단숨에 넘겼습니다.(1965년 1월 23일자 매일신문)
저 비탈밭도 이 무렵 개간됐습니다. 지금 저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역도, 번지도 모르고 사진 한 장으로 무작정 찾아 나섰습니다. 빈손으로 보낸 지 수 개월. 틈만 나면 수사하듯 사진을 봤습니다. 담뱃굴과 주택 구조는 경북 북부 스타일, 가로수 그림자를 보면 동북 사면, 그 아래로 지나는 도로, 밭 고랑에 희미한 고추대 그루터기….
단서를 조합해 봉화,영양,청송 일대 위성지도를 훓었습니다. 낙담하길 수십 번. 그러던 어느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주택 위치, 도로와 밭 모양세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청송군 진보면 이촌리 산 58-11 일원.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60년 세월에 담뱃굴은 간데없고 온통 사과밭으로 변했습니다. 이웃은 모두 두어 번씩 주인이 바꼈지만 다행히도 고향집을 지키고 사는 마지막 산증인 장경임(63)씨. "어머 세상에, 저기가 우리집이예요…." "이른 아침 부모님 따라 담뱃잎 따고, 엮고, 굴에 매달고 나서야 학교 엘 갔어요. 풀숲 이슬에 발목이 흠뻑 젖곤 했었는데…." 옛 사진 한 장에 아련한 그시절이 울컥 쏟아집니다.
굶지 않고 살아보자고 1백 계단이 넘도록 괭이로 삽으로 일군 다단계식 개간지. 1960년대를 억척스레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의 주름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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