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인류세로 지칭되는 기후 변화 위기의 시대,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SF영화나 미래사회를 다루고 있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를 덮칠 재앙의 현실을 예측하는 기후과학자들의 진단에 공포심마저 든다. 자본산업과 인간이 토해내는 탄소배출로 오작동 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재앙으로 다룬 영화나 다큐멘타리를 허구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지구의 평균온도는 1.4℃ 상승했다. 위기에 처한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0이 되는 탄소중립 시대를 위한 노력들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지구 표면의 분노의 온도는 식지 않고 있다. 웹툰과 영화에서나 다룰 법한 기후 변화 위기와 미래사회를 소재로 한 다양한 연극 무대가 등장하고 있다.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연극연출가 케이티 미첼은 안무가 제롬 벨과 함께 스위스 로잔 비디 극장에서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하여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작품을 연달아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국내 무대에서는 지구의 수명을 24시간으로 가정하고 종말까지 60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다룬 다큐멘타리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전윤환 작, 연출)을 떠올릴 수 있겠다.
기후 변화 위기 시대를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한 발 성큼 나간 작품, <제로쉴드제로>(이예본 작, 이은비 연출,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극장장, 강량원)가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의 작가지원 프로젝트 2023 「봄 작가, 겨울무대」 의 마지막 작품으로 공연되었다. 작가 이예본은 <두더지 떼>로 지난해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다. 2050년을 배경으로 하는 <제로쉴드제로>는 기후 변화로 인한 탄소 포화 상태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열대화와 사막화로 대기오염의 열대성을 차단할 수 있는 보호 헬멧과 특수 슈트를 착용해야만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탄소와 자외선을 정화시켜주는 쉴드를 공기청정기처럼 사용료를 내고 설치해 인공지능로봇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빈곤한 젊은 세대 루이(김소정 분)과 재이(황순미 분)의 불안한 주거 환경을 개연성 있게 다루고 있다. 이은비 연출은 이예본 작가가 그려낸 미래사회의 현실과 불안을 무대 공간을 위아래로 확장한 원형의 '제로쉴드제로'를 통해 구현한다. 마치 30년 뒤 지구 생활을 보여 주는 듯한 무대는 탄소와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밀폐된 집,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제로쉴드제로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전지니 연극평론가는 "연극계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꾸준히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연출가 전윤환이 다큐멘터리, 렉처 퍼포먼스 등의 형식을 빌려 오늘날의 현실 정치와 기후환경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사유를 자극한다면, <제로쉴드제로>는 유사한 문제의식을 다루지만 기후 위기 이후 계급화가 더욱 심화된 세상을 웰메이드 플레이의 형식 안에서 풀어간다"고 설명했다. <제로쉴드제로>는 탄소배출 제로 시대를 선언한 2050년도의 미래사회를 그려내면서도 동시에 30년 뒤 기후 변화 위기의 미래시대(세대)에도 주거불안은 계속된다는 설정을 통해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한다. 가상의 미래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설치를 권장하는 '쉴드' 역시 고급형과 서민형으로 나뉜다는 설정을 통해 양극화된 주거상황을 기후 변화 위기의 표면 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 위기의 시대, 주거불안의 미래
무대는 강렬한 색으로 뒤덮인 생활 침구와 물품들이 흩어져 있고 집는 마치 유목 생활을 연상케 한다. 2050년 그러니까 30년 뒤 루이의 집이다. "열대화 시대의 혁신! 모두의 안전한 공간을 위한 제로쉴드! 빌라, 아파트, 주택, 어떤 형태라도 안전하게 감싸드립니다. (중략) 안전하게 숨을 쉬고 싶으신가요? 나를 위한 선택, 가족을 위한 선텍 제로 쉴드!" 광고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루이의 집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외선과 탄소로부터 차단되어 마치 우주선 내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이가 외부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닥 한 가운데에 자리한다. 루이는 인공지능 로봇(IOT, 나경호 분)에게 매일 아침 수면(睡眠)의 상태와 탄소량을 확인받는 것으로 일상생활을 시작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보다 지능과 감각이 더 발달한 상태로 설정되어 있는데, 나경호 배우의 로봇 연기는 극 중 루이의 일상생활에 흡수되며 생활형 인공지능 로봇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이들이 살아가는 미래사회는 급속한 사막화로 곤충이 멸종위기에 놓인 사회이고, 국민보급형 쉴드 구독료를 4퍼센트 이상 인상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뉴스로 채워지는 사회다. 쉴드 구독료 미납과 쉴드 철거 위협, 기후 변화 못지 않게 빈곤층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가상의 미래사회에서도 계속된다.
국가는 인간들이 뱉어내는 탄소량으로 탄소세를 부가해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이고, 기업은 보급형, 고급형, 서민형으로 구분된 쉴드 개발에 혈안이 되어있다. 정부는 서민들의 생존과 연결된 쉴드 구독료를 인상하고, 삶의 질, 나아가 생존을 좌우하는 쉴드의 양극화는 30년 뒤 미래사회에서도 부의 양극화가 온난화만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후 변화 위기의 미래사회에 부의 양극화와 주거불안, 이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병치해 지금, 여기의 현실을 텍스트에 용해시킨 극작법이 대단하다. 극은 드론 택배 조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재이(황순미 분)가 루이 집으로 오배송된 드론 연결장치 물건을 찾으러 원형의 밀폐 통로를 통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재이가 루이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다룬다. 여전히 커스텀 쉴드를 할인한다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루이와 재이는 최저 쉴드 구독료를 내기 위해 무인 드론 배달로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들의 드론은 택배 수령 가능 시간을 초과해 번번이 배달에 실패한다. 루이와 재이가 살아가는 30년 뒤 미래사회에서도 계속되는 비정규직으로는 버틸 수 없는 청년세대들의 고립된 현실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루이의 집에서 드론 조정 장치를 통해 무인 택배를 배달하는 장면을 마치 얼레를 이용해 연을 날리는 것처럼 표현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투식량을 비치해 놓고 인상되는 쉴드 구독료와 낡은 슈트라도 구입하기 위한 루이와 재이의 생존을 위한 연대의 삶이 계속된다. 국가가 부과하는 탄소세는 전년 대비 백일 퍼센트 상승하고 드론 배달로는 삶을 지속하기 어렵다. <제로쉴드제로>의 미래사회에서 빈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쉴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층 절망적인 미래로 느껴진다. 루이와 재이 집은 쉴드가 손상되며 기준치 이상의 이산화탄소와 자외선이 들어오며 죽음의 집이 되어간다. 탄소중립정책에 실패한 정부의 탄소배출조사원(황규찬 분)이 탄소세 절감을 위해 쉴드를 업그레이드하거나 고급형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는 장면에서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국가 정책의 실패 혹은 부재가 떠오른다. 점입가경으로 쉴드 상담 복지센터는 손상된 쉴드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보험 가입이 필수라며 쉴드보험가입을 취업상품 자격증(드론자격증, 버그처리 자격중)과 연계한 파생상품을 제안한다. 재이는 "제대로 된 해결책도 없이, 우리가 공사하기 싫어서 이래? 나도 이사가고 싶어. 당연히 쉴드로 집 짓고 싶지. 하루 벌기도 벅찬 사람들 앞에서 ' 지구 전체가 피해를 받아요' 라니, 제정신이야?" 라며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무기력한 현실을 질타한다.
◆연대의 삶, 공유하는 다세대 쉴드 정책
타미(송석근 분)는 월드와이드그리너스에서 활동하면서 쉴드 빈민을 위한 공유 쉴드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인물이다. 타미가 설명하는 프로젝트는 다세대 쉴드 공동주택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공급한다는 이상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정부의 에어로졸(대본에 따르면, 공기 중 부유하는 작은 고체 및 액체 입자들을 지칭함) 정책 시행을 앞두고 돈벌이에 나선 것이었다. 재이는 타미의 월드와이드그리너스 프로젝트 커뮤니티에 합류를 결심한다. 타미의 등장 전까지는 루이와 재이의 집을 중심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투영했다면, 이후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극장 전체가 극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타미와 재이는 무대 위편, 외벽 철계단으로 이동하며 월드와이드그리너스가 꿈꾸는 이상적인 커뮤니티로 이동하는데, 슈트와 헬멧을 착용해도 견디기 미래도시의 풍경을 상상케 했다. 거친 모래 태풍이 몰아치고, 죽음의 도시로 변해 버린 지구를 표현한 듯한 이 장면의 미장센으로 기후 변화 위기 시대 국가의 안전시스템이 오작동 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실을 이은비 연출은 드러내고자 했지만, 다소 부족했다. 재이는 월드와이드그리너스를 탈퇴하고 되돌아 가는 길이 자살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뜨겁고 건조한 모래 폭풍과 사투를 벌이며 루이의 집으로 되돌아온다. 헬멧과 슈트를 착용한 채 쉴드를 작동시켜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과 그것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맑고 차가운 공기를 딱 한 번이라도 느끼고 싶은 두 사람의 지극히 인간적인 갈망이 대비되는 마지막 장면은 인간에게 생존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제로쉴드제로>는 매년 신춘문예 희곡 등단 작가를 대상으로 신작 장막 집필과 낭독 공연을 거쳐 무대를 마련하는 '봄 작가 겨울무대'의 작품 중 한 편이다. 기후 변화 위기의 미래사회를 통해 고립된 청년세대의 불안을 구체적인 환경문제와 주거문제로 플어낸 이예본 작가의 재능이 기대 이상이었다. 과감하게 무대 공간을 확장시킨 이은비 연출의 에너지와 배우들의 앙상블로 <제로쉴드제로>는 기후 변화 위기와 주거불안 시대에 우리가 성찰하고 행동할 것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다만 이번 공연이 연출과 배우들의 성숙함으로 제로쉴드가 제로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곡을 이탈한 무대화가 어떤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잊지 않기 바란다. 올해 '봄 작가, 겨울무대' 낭독공연은 <카운팅>(작, 윤소정 연출, 하동기> <서재 결혼시키기>(작, 이경헌 연출, 신명민> (작, 이민선 연출, 박세련), <제로쉴드제로>(작, 이예본 연출, 이은비>< 자전거 타는 소년과 이제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들>(작, 이익훈 연출 , 장태준), <작은 집을 불태우는 일> (작, 임선영 연출, 손현규) 옷장에 구더기>(작, 정희정 연출 윤혜진> <계단>(작 조한빈 연출 황태선) <등산하는 아이들>(작, 주은길 연출, 윤한솔) 9개 작품으로 이중 <카운팅>, <서재 결혼시키기>, <제로쉴드제로> 세 작품이 11월14일부터 12월2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무대화 됐었고 윤소정, 하동기의 카운팅도 주목을 받았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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