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봉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
나는 전통시장 돌아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시끌벅적한 장날이 되면 장터에는 볼거리 먹거리 살 거리가 많아서 신명이 났다. 장날은 대개 오일장이다. 닷새 만에 장이 선다. 예전에는 닷새 터울로 열리는 장에 가야 필요한 것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요즘은 가까운 동네 마트나 슈퍼와 편의점에만 가도 언제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지만 어릴 적엔 문방구를 사기 위해 장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장날이 되면 어머니 따라 시오리 길을 걸어 읍내로 장을 보러 갔다. 길을 걷다가 힘들면 간혹 소달구지를 얻어 타고 가기도 했다. 오일장 가는 길 냇가에 흐르던 물과 돌들은 얼마나 해맑고 청량했던가. 들녘에 핀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오늘날 나의 시심을 키웠다.
요즘도 전통시장에 가면 오일장이 선다. 아파트 입구나 앞마당까지 찾아와서 전을 펼치는 오일장도 있다. 싱싱한 생물과 떼갈 좋은 과일들, 잡것 다 솎아낸 참한 채소 묶음 싸게 파는 알뜰장이다. 사람들 하나둘 모여 왁자한 먹자골목 줄을 잇고 족발 뜯으며 막걸릿잔 기울이는, 신이 난 듯 떠들어대는 아저씨들. 떡볶이 꼬치 어묵튀김이랑 순대가 순식간에 동났다. 호박떡이 무럭무럭 쪄지는 동안, 지나가는 바람에, 해그림자 속 몸 낮추는 으름덩굴 자줏빛 꽃술에, 농이라도 걸치며 기다리는 순간, 밀원(蜜源)의 세월 다 보낸 할머니 팔다리 같은 생강나무 잔가지 위에 배추흰나비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아직도 한겨울이지만 정초부터 비교적 봄날 같은 훈훈한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추스르고 활짝 기지개를 켜고 주변의 전통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새해 첫 전통시장 돌아보기는 현풍 도깨비시장. 어제 오후 대구테크노폴리스에 있는 공장에 업무가 있어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깨비시장에 들러 수구레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왔다. 나는 자칭 국밥 마니아라고 할 만큼 국밥을 좋아해 국밥 맛집을 찾아다니기를 즐기는 편이다. 국밥에는 추억이 스며있다.
이제는 수구레가 된/ 할매의 생이 뚝배기 안에 끓는다/ 뼈까지 우려 말아 놓은 소머리국밥 안에/ 내 얼굴도 빠져 있다(배영수 시인의 '소머리 국밥' 중)
우리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來得早(래득조). 마침 일이 잘됐다는 말과, 不如來得巧(불여래득교). 공교롭게 일이 꼬여 잘못됐다는 말로 통용된다. 새해에는 '불여래득교' 말고 '래득조' 하자.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는 가는 날이 장날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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