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규 (사)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 겸 기술사·공학박사
오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의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을 두고 노동계와 중소기업계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 2년간 이 법을 적용해 온 50인 이상 사업체에 대해서는 시행 결과를 두고 법 효력의 유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징역과 벌금을 함께 병과할 수 있고 이와 별도로 법인에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양벌규정의 강력한 법이다. 중대 재해는 '중대시민재해'와 '중대산업재해'로 분류되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중교통시설이나 공중이용시설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하고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면 지자체장을 처벌하게 된다. 기존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감리 등 담당 책임자에게 처벌을 가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담당 책임자를 포함한 최고 경영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다.
현행 법률에 따라 오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됨에 따라 중소사업체들은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 측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중대 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올해 각 분기별로 보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평균 42.4%의 가장 높은 재해율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 이 법이 시행된 2년 동안 중대 재해 발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2/4분기와 3/4분기에는 사망자가 14.5%, 10.5% 줄었다. 하지만 전체 해당근로자에 대한 사망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비율을 나타내는 재해율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 발생한 사망자수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나타났고, 재해율 수치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현재의 결과치만으로 이 법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크다.
이 법의 목적은 중대재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총책임자인 최고경영자를 처벌하하지만, 최고경영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는 논리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경각심을 갖고 안전대책을 수립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재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대책 수립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안전대책을 세웠더라도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안전대책은 유명무실할 것이다. 사업장마다 다른 현장의 안전대책은 안전 관리력을 갖춘 전문가가 수립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안전대책은 비전문가도 누구나 수립할 수 있지만 안전대책을 수립했다고 해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대책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전대책에 포함된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법이 시행된 지 3년차지만, 재해율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경영책임자를 포함한 안전관리자의 안전무지(無知) 때문으로 진단한다. 우리는 흔히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고 얘기를 한다. 하지만 '안전불감증'보다 더 큰 원인은 '안전무지'로 볼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을 알지만 내가 하면 사고가 나지 않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안전불감증이고,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이 안전무지다. 안전무지에서는 안전관리대책도 실효성이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이태원 압사에서도 보듯이 수십 통의 위험신고 전화를 했지만 대응이 신속하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에 의해서 사람이 죽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바로 안전무지 상태이다. 만일 이 상황에서 불이 났다고 전화했다면 얼마나 빨리 대응했을까. 압사가 화재보다 더 위험함을 알지 못한 무지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안전무지를 해소하는 방법은 식상한 안전교육보다 근로자가 공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안전 상식 전달이 중요하다.
지난해 근속기간별 재해율을 보면 6개월 미만 근로자의 재해가 47.7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3D 업종에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늘어났고, 연령별로 보면 위험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이 어려운 60세 이상 근로자의 재해도 전체 산업재해의 34.78%를 차지한다. 현 안전교육을 포함한 안전대책은 획일적인 내용으로 시행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위험 요인별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근속기간이 적은 6개월 미만의 근로자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 및 60세 이상의 고령자인 안전취약 계층별 맞춤형으로 수립, 시행되어야 한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법 시행을 두고 유예, 시행 중 어떤 것을 택하든지 중소사업체의 안전 관리력을 어떻게 향상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강력한 처벌만이 진정한 해법이 아니란 것도 알아야 한다. 능력의 향상은 스스로 노력하는 것보다 지원이 가장 효과가 높다. 정부는 안전 전문가의 역할이 중소사업체에 지원, 활용될 수 있도록 별도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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