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8개 구‧군, 매년 예산 들여 장애인 경사로 지원사업 나서
사후 관리 책임은 모호해 '애물단지' 전락하기도
전문가들 "모든 건물 장애인 경사로 설치 의무화해야"
대구 8개 구‧군이 매년 수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장애인 경사로 설치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적고, 사후관리에 대한 규정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써 만든 시설물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후속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용지물 경사로 수두룩
26일 찾은 동구 화랑로의 한 음식점. 지난 2021년 동구청으로부터 구비 75만원을 지원받아 이곳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는 휠체어를 탄 채로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가게 앞 출입문과 연결된 장애인 경사로가 인도까지 연결돼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있는 계단식 턱까지만 연결된 탓이었다. 인도와 계단식 턱의 높이 차이는 약 10㎝에 달했다.
북구 호암로의 한 약국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도 상황은 비슷했다. 약국 출입문과 인도 사이 약 1m 길이의 계단식 턱이 있고 그 사이에만 경사로가 마련돼있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휠체어로 약국 진입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 밖에도 구청 예산을 지원 받아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가 찌그러지는 등 파손된 채 방치된 곳도 왕왕 눈에 띄었다.
건물주가 사비로 직접 설치한 경사로 역시 사정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달서구 이곡동의 한 음식점 앞에 설치된 경사로는 지면에 닿기 전에 끊긴 모습이었고, 인근 빵집 앞에 설치된 알루미늄 재질의 경사로는 모서리가 움푹 찌그러진 상태로 휠체어를 타고 지나갈 경우 사고 위험성이 커 보였다.
◆올해 103개 신규 설치, 사후관리가 문제
경사로 설치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면적이 50㎡(약 15평) 이상인 신축 건물은 장애인 경사로 설치가 의무화됐다. 지자체들은 면적 300㎡(약 90평) 이하인 기존 노후 건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경사로 설치를 지원하는 '소규모 생활밀착형 경사로 지원사업'도 추진 중이다. 올해에도 대구에는 ▷중구 27개 ▷동구 12개 ▷서구 16개 ▷남구 8개 ▷북구 14개 ▷수성구 22개 ▷달서구 4개 등 103개가 새로 설치됐다.
문제는 장애인 경사로가 매년 확대되더라도, 사후관리에 대한 규정이 없어 방치되거나 자진 철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면적 300㎡ 이하인 노후 건물의 경우 장애인 경사로를 유지·보수해야 할 법적 의무가 건물주에게 없기 때문이다. 보행자 민원에 따라 이미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를 자진철거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구청에 지원을 받아 경사로를 설치한 한 건물주는 "구청의 도움으로 경사로 설치는 했지만, 개인 비용을 들여 관리하기는 어렵다. 경사로를 유지·보수해야 할 법적인 의무도 없다"며 "장애인을 위해서 경사로를 길고 완만하게 만들었다가는 인도를 다니는 보행자들에게 새로운 불편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사후 관리까지 떠맡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정선홍 대구시 장애인복지과장은 "경사로 설치만 지자체에서 부담하고, 사후 관리는 건물주가 하는 게 맞지 않느냐"며 "사업 예산이 한정돼 있기에 경사로가 훼손되더라도 지자체에서 경사로 보수 등 추가 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인센티브 제공 및 관련법 개정 필요
전문가들은 지자체에서 교통 약자의 접근성을 높인 점포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유인책을 마련한 뒤 장기적으로는 면적과 관계없이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장애인 경사로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근배 대구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지자체에서 향후 모니터링을 통해 장애인 경사로 관리를 책임진다고 해도 행정력이 제한돼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정책이 될 순 없다"며 "지역 축제를 기획하거나 지역 맛집 홍보를 펼칠 때 휠체어 접근성을 갖춘 점포를 우선순위로 두는 등 적절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민호 다릿돌 장애인 팀장은 "대구에는 작은 소매점이나 편의점 등 50㎡가 되지 않는 건물이 훨씬 많다. 지자체에서 하는 장애인 경사로 설치 지원 사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모든 건물에 경사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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