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정치는 참혹했다. 정치는 생각하기조차 싫다는 국민이 크게 늘었고, 여야 모두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했다. 정부·여당은 국민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에 의해 평가받는데, 솔직히 국민의힘이 국민의 삶에 대해 걱정한 적이 있었는가.
보수적 성향의 필자조차 아무리 돌아봐도 국민을 위한 구체적 정책이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김기현 지도부의 등장과 소멸 및 그 과정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좌충우돌뿐이었지, 어렵고 힘든 국민의 삶에 진정성 있는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 않다. 한일 관계 정상화나 한미 간 핵 협의체 구성을 비롯한 외교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지만, 북한의 위협을 비롯한 안보 위협은 여전하다.
국민을 외면한 것은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의석만 믿고 의회 독재를 서슴지 않았고, 이재명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방탄 국회에는 열과 성을 다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뜬금없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투쟁이었다. 3분의 2 의석을 바탕으로 무소불위인 정당의 대표가 무엇 때문에 단식, 그것도 출퇴근 단식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간헐적 단식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법인카드로 밥값을 비롯한 생활비를 썼다는 주장이 나와도 변명 한마디 못하는 이 대표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대통령, 국회, 지방 권력을 모두 가졌을 때도 하지 않았던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을 발동하도록 강요한 것도 정상은 아니다.
코로나19와 전쟁, 강대국의 자국 이기주의, 패권국가 간 과도한 경쟁 등으로 점철된 2023년은 세계에 큰 위기를 불러왔다. 특히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중 간 패권 경쟁, 그리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세계시장 공급망 붕괴를 촉진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큰 시련을 안겨 주었다.
반도체, 배터리 등 전자산업의 어려움, 에너지 가격 상승, 희토류를 비롯한 자원 갈등이 어우러져 대기업들도 휘청거렸고, 협력 관계에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해졌다. 기업의 어려움은 곧 금융은 물론,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의 삶은 어려움을 넘어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민관 모두 합심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서야 하건만 국민도 갈라지고 흩어져 도무지 하나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처리수를 방류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현실을 웅변적으로 말해 준다. 과학적 증거로 판단하면 될 일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서로 물어뜯고 싸우면서 국력을 낭비했다.
정부는 새만금 잼버리대회를 망쳤고, 부산엑스포 유치에 완패했다. 잼버리대회는 관계자들의 무능과 무관심, 그리고 전북도의 과도한 욕심이 문제였고, 엑스포 유치는 정보의 왜곡으로 1차에서 29표밖에 얻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두 사업에서의 실패는 철저하게 분석해 다시는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사회적 문제로는 교원들의 극단적 선택이 집중된 해였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랑, 입시 중심 교육, 지나친 학생 인권 보호로 무너진 사제 관계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교육 시스템과 학교와 학부모의 관계에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은 틀림없다.
한편 극단적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 가능성이 크게 부각된 해이기도 했다. 월 출생자 수가 2만 명 밑으로 내려가 30년 이내에 인구는 반토막 나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대한민국이 손꼽히고 있다. 오죽하면 세계 언론이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중세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 심하다고 할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불행하게도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대한민국의 정치뿐이다. 여야는 물론 국민도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23년의 실망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느 쪽이든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후보와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제22대 총선이 사람이나 세대의 교체를 넘어 정치 자체를 바꾸는 선거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승천하는 용이 아니라 떨어지는 이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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