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황동규의 시 '조그만 사랑노래'의 한 구절이다. 이 짧은 구절은 추운 겨울 이별에서 오는 고통과 상실감을 담고 있다. 이별을 통보 받은 사람의 마음은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은 고통일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리는 '눈은 비가 죽어서 내리는 혼'이라고 했다. 이별의 슬픔으로 한없이 떠다니는 눈송이가 된 기분은 어떤 마음일까.
사랑에 담긴 의미란 무엇인가,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으로 인류에게 보편적이며, 인격적인 교제 또는 인격 이외의 가치와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설렘과 감동을 주는 말이 있을까. 의학적 관점에서의 사랑은 뇌의 화학작용이라고도 한다.
연말연시가 되면 사랑이 다시 소환된다. 사랑은 인류 역사에서 종교와 학문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다. 오직 예술을 통해서 삶이 가능하고 존재를 보다 심오하게 이끄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던 니체는 삶의 고양을 위한 사랑은 자기 자신이 되게 하고 통찰력을 갖게 하는 힘이라고 했다.
실연의 고통에는 약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야 치유되는 병 아닌 병이라고도 한다. 실연을 위로하는 노래나 시 그리고 소설과 영화들이 많지만 실연의 아픔은 다시 사랑으로 치유가 된다. 인류의 문화가 축적해온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 역시도 사랑을 보다 깊고 넓은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픈 사랑을 승화시킨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것은 다시 사랑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희생'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986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초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정적인 아름다움과 전쟁의 참화에 휩싸여 파멸직전 재앙의 환상이 그려진다. 대재앙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이자 아버지가 자기희생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희생'을 감독한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영화가 남긴 메시지는 바로 희생의 동의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처럼 사랑과 희생의 순환 역시 자연의 본성이다. 연말연시 눈도 입도 귀도 보고 듣는 말 속에서 마르지 않는 마음의 샘이 사랑이다. 사랑은 '인류 보존의 법칙이자 진화의 원동력'이다. 그래서 사랑은 생명의 빛인 동시에 슬픔의 그림자다.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만, 희생의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모든 곳에 깃든 사랑, 그것은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가 닿는 곳, 인류를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강요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숭고한 사랑의 빛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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