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대요리문답 (Grosser Katechismus)에서 기도를 말했다. "교회 안에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문을 암송하는 외적 반복도 기도가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한 기도에 대해 도전했다. 수도원은 기도하는 곳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모토는 '기도하고 노동하라(Ora et labora)'이다.
애드몬트 수도원을 향하는 길에 기도가 생각났고, 개혁교회 신학자 구스테 사바티에(Auguste Sabatier)가 언급한 기도가 떠올랐다. "기도는 행동하는 종교입니다. 즉 기도는 진정한 종교입니다. 온 정신이 기도를 추구하지 않으면 종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알프스의 품에 고이 안긴 수도원
오스트리아 동쪽, 알프스산맥이 시작되는 곳을 향해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스티리아의 애드몬트(Admont) 마을은 엔스강의 알프스산맥 깊은 계곡에 있었다. 애드몬트 마을은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인 듯이 알프스의 품에 고이 안겨 있었다. 7월의 자연은 깊은 녹색으로 물들었고, 장엄한 알프스는 짙푸른 색이었다. 애드몬트는 맑고 깨끗했다.
어느 건물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길가에는 사슴 떼가 서 있고, 풀밭에는 소들이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애드몬트를 보는 순간,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던 그라스미어(Grasmere)가 생각났다. 애드몬트는 그런 장소였다. 저 멀리 뾰쪽하게 깎은 연필처럼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은 두 개의 탑이 보였다. 애드몬트 수도원이었다.
게조이제 국립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애드몬트 수도원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애드몬트(Admont)는 라틴어 "ad montes"에서 파생된 말인데 '산에서'라는 의미다. 애드몬트 수도원은 1074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게브하르트가 구르크의 헤마(Hemma of Gurk)의 유산을 물려받아 설립하였고, 잘츠부르크의 성 베드로 수도원 수도승들이 이곳으로 이주함으로 수도원은 안정되었다.
11세기 유럽 수도원은 위기였고, 그즈음 베네딕트 수도원 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그중에 클루니 개혁 운동이 있었다. 교회의 세속화를 막고, 수도원은 다시 본래의 모습인 '고독'과 '가난'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2대 수도원장이었던 기젤베르트는 클루니 개혁을 애드몬트 수도원에 도입했다.
초기 수도원장인 볼프홀트는 귀족 가문의 소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애드몬트 수도원 내에 수녀원을 설립했다. 지금은 수도원이지만 한 때 애드몬트 수도원은 남녀 수도승이 공존하고 공생하는 이중 수도원 성격을 띠게 되었다. 중세의 남녀 공동 수도원에는 수도승과 수녀는 한 건물에 거주할 수 없었고, 수도승은 수녀들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수도승과 수녀들은 사적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수도승과 수녀들이 엄격하게 분리돼 생활
12세기 애드몬트의 아이림베르트는 자신의 공동체 수녀들은 세 개의 자물쇠로 보호된 세 개의 문에 갇혀 살았다고 했다. 그 문은 오직 수녀들만이 들어오도록 허락되거나 신부가 죽어가는 이에게 마지막 예배를 드릴 때, 그리고 숨을 거둔 수녀의 시신을 옮길 때만 열렸다고 한다.애드몬트 수도원도 공동 수도원으로 수도승과 수녀들이 엄격하게 분리돼 생활했지만, 수녀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다.
수련 수녀들은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수녀들은 어린 소녀들에게 산문과 시를 가르쳤다. 지적 수준이 높은 수녀들은 교양과목을 담당했다. 수녀들은 또한 후원자나 가정에 편지로 소식을 전했다. 에드몬트 수도원의 수녀들은 필사를 통해 성경과 교부들의 문서를 보급했다. 애드몬트 수도원 수녀들은 인문학적 힘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았다. 읽고 쓰는 글의 힘이 봉쇄된 세계를 넘어 세상과 소통하게 만들었다.
애드몬트 수도원은 아름다웠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수도원을 둘러봤다. 건축물과 이곳저곳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수도원 동서쪽 중앙에 서 있는 가느다란 석조상(石造像)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석조상을 바라봤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 석조상이 눈에 아른거렸다.
석조상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마음껏 그 석조상을 묵상할 생각이었다. 오래 머물렀다. 여윈 어깨, 가느다란 목, 작은 얼굴, 그녀의 애잔한 모습이 내 영혼을 깊은 슬픔으로 인도했다. 애드몬트 수도원에 대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석조상, 그 여인이 모습이 눈에 밟힌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석조상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석조상의 그 여인은 구르크의 헤마였다. 그녀는 부유한 백작 부인으로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부자로 살지 않았다. 모든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리고 불쌍한 영혼을 위해 오스트리아 카린시아에 10개의 교회를 세웠다. 이곳 애드몬트 수도원도 그녀의 후원으로 세워졌다. 가난한 영혼을 위한 그녀의 마음은 지금도 그곳에 있다.
◆수도원 교회,오스트리아 최초의 신고딕 양식
수도승의 안내로 숙소에 들어왔다. 숙소는 수도원 교회 동쪽 건물이었고, 방은 단정하고 깨끗했다. 수많은 수도원을 다녔지만 애드몬트 수도원과 같은 숙소는 처음이었다. 수도원 객실에 머문 이상 기도와 예배 시간 만큼은 수도승들의 일과를 따르고 싶었다. 이곳에는 지금도 26명의 수도승이 하루에 4번씩 모여 성무일도와 미사를 드리고 있다.
아침 첫 기도는 6시 15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기도에 참석했다. 아침 기도 장소는 수도원 교회가 아니라 2층 작은 예배당이었다. 수도승들이 몇 명이나 참석하는지 궁금했다. 방문객도 수도승도 많지 않았다. 시편을 반복해 읽는 아침 기도는 조금 지루했다. 한국교회의 새벽 기도가 생각났다. 보통 새벽 5시에 찬송과 성경 읽기, 설교가 이어진다. 예배가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기도 시간을 가진다. 수도원이든 교회든 기도는 종교 행위의 중심이다.
일요일이었다. 수도원 교회로 향했다. 수도원 교회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수도원 교회는 1865년 화재 이후, 건축가 빌헬름 뷔허(Wilhelm Bücher)가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지은 오스트리아 최초의 신고딕 양식이다. 수도원 교회 서쪽 2개의 탑 높이는 67m이며, 정면에는 성 베네딕토와 성 스콜라스티카의 조각상이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중앙 통로와 두 개의 측면 통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통로에는 5개의 측면 예배당과 6개의 제단이 있었다.
교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도원 교회에서 드린 일요일 예배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인데, 이날은 특별했다. 그들의 예배 언어는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기도와 찬송이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집례자의 손짓 하나, 청중들의 몸짓 하나, 그 모두가 예배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 도서관
애드몬트 수도원에 머문 며칠간 도서관,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을 찾았다. 자연사 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서 도마뱀, 악어, 포유류가 담긴 의료용 항아리를 보다니 놀라웠다. 과학자 가브리엘 스트로블 신부가 수집한 벌레와 나비 수집품이 한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애드몬트 수도원에서 놓칠 수 없는 곳이 도서관이다. 길이 70m, 폭 14m, 높이 13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 도서관이다.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디자인된 이 도서관은 다양한 건축 예술의 장르를 통해 계몽주의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옅은 분홍색, 파란색, 금색으로 칠해진 큐폴라 프레스코가 인상적이다.
도서관은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48개 창문을 통해 자연의 빛이 도서관에 들어온다. 애드몬트 도서관은 지금 약 20만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가장 귀한 자료로는 8세기의 사본과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 다양한 성경 필사본이다.
애드몬트 수도원 도서관에는 수많은 자료들이 있다. 그런데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는 도서관 문서인 Admont, MS 289을 필사했다. 기도와 묵상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안셀무스는 단지 토스카나 백작 부인 미틸다를 위해 이 기도문을 필사했다. 기도가 무엇이기에 중세의 대학자요 캔터베리 대주교인 그가 이 문서를 필사했던 것일까.
그는 오도된 기도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기도는 기도문을 낭송하는 것도 기도집을 읽은 행위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찾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그 길을 찾기 위해 기도한다. 그렇기에, 기도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행위이고,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기도는 그저 우리의 정신을 자극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자기를 성찰하는 것. 그래서 성 안토니우스는 기도를 이렇게 말했다. "기도는 기도자가 자신을 의식하거나 자신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의식할 때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다."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일반의로 돌아오는 사직 전공의들…의료 정상화 신호 vs 기형적 구조 확대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