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새판 짜기'로 출렁거리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전격 사퇴했다. 그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 대표인 저의 몫"이라며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의 사퇴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혁신위 조기 해산, 당의 지지율 저조 등과 관련해 당 대표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 12일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역사의 뒤편에서 국민의힘 총선 승리를 응원하겠다"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당 대표 경선 때 형성된 윤심의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는 붕괴됐다. 이는 국민의힘이 바뀌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기에 충분하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비대위원장 인선에서 얼마나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줄지가 관건이다.
당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참신한 인물을 등장시켜 감동과 스토리를 만들어 극적 반전을 이루고, 쇄신 공천을 할 수 있다면 총선 승리를 노려 볼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의 숨은 책사'가 비대위원장이 되어 '친윤 공천'을 주도하면 혁신은 사라지고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이재명 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던 이낙연 전 대표가 13일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대안이 되는 게 최상"이라면서 새해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이에 앞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이후 이재명 사당, 개딸 당으로 변질됐다"며 "온갖 흠이 쌓여 도저히 고쳐 쓰기 힘든 상황"이라며 탈당했다. 한국 정치에서 신당 창당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지향하는 가치가 분명하고, 지역 기반이 있으며, 신당 창당에 동참하는 현역 의원이 있고, 대선 주자급 인물이 존재해야 한다. 대선 주자급 이낙연 전 대표가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을 기치로, 호남과 수도권을 지역 기반으로,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와 친문 현역 의원들과 의미 있는 결합을 이뤄낸다면 파괴력이 커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의중도 핵심 변수다.
이렇게 되면 내년 선거판은 '윤석열 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 대 문재인'의 대결로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이낙연 신당'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현재까지 탈당 동조 현역 의원이 없다는 것은 한계다. 한국 총선에서 입증된 '혁신의 법칙'이 있다. 더 절박하게 변화하고 혁신하는 세력이 승리한다. '박근혜-김종인 비대위'는 혁신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한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2011년 12월 집권당인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디도스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등장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개혁 공천의 일환으로 '현역 의원 25% 공천 배제'를 단행했다. 경제민주화, 맞춤형 복지와 같이 진보 어젠다를 포용하면서 외연을 확장했다.
이를 통해 새누리당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었고 과반 승리(152석)를 했다. 2016년 총선을 몇 달 앞두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 비대위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개혁 공천을 단행했다. 강성 친문 인사인 이해찬, 정청래, 정봉주 등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 이런 개혁 공천 이미지가 기폭제가 되어 민주당은 123석으로 제1당이 됐다.
민주당이 분당을 피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만나 총선 승리의 절박한 마음으로 당내 온건파인 TK 출신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내세워 통합형 비대위로 전환할 경우 강력한 쇄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민주당 비명계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의원이 참여하는 '원칙과 상식'도 "선당후사의 길, 민주적 통합의 길, 통합 비대위로 가자"며 "당 대표부터 지도부 그리고 586 중진들 각자 기득권을 내려놓는 선당후사를 결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우리 당은 내년 총선에서 단합과 혁신을 통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친명과 비명이 합의하는 통합형 비대위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다. 만약, 여야 모두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어 '혁신 경쟁'에 돌입하여 정치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긍정적이다. 단언컨대,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한 비전과 공약을 제시하면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선거 연대를 만드는 세력이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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