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매력 제대로 배워보자” 전통주 교육 인기 급상승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수많은 술병들로 둘러싸인 좁은 강의실에 모여든 30여명이 바삐 움직인다. 이들은 모두 전통주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한 수강생들이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교육시간 동안 술빚기 이론 뿐 아니라 다양한 전통주 실습도 병행한다. 특이한 건 이들 30여명 중 대부분은 2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대다.
이들이 교육받은 오후 시간대가 지나가고 나면 저녁 7시부터는 저녁반 수업이 이어진다. 오후반 수강생들이 빠져나가면 똑같이 30명의 수강생들이 다시 강의실을 채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역시 20대 후반~40대 초반이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에서 진행하는 3개월 과정의 전통주 수업 풍경이다. 이들은 3개월 동안 기초에서부터 술빚기 이론을 배우고, 술빚기의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누룩을 제조하고, 누룩을 이용한 막걸리, 약주, 청주 등의 발효주를 빚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한다.

이곳의 전통주 수업은 현재 대기하고 있는 인원만 해도 수백명이다. 이 수업을 들으려면 대략 1년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수강생의 대부분이 젊은층이라는 것도 하나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 훈련기관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젊은층 수강생들이 대폭 늘어나 최근의 교육생들은 대부분 20대 후반~40대 초반"이라며 "이들이 교육 이수 후 열정적으로 술 제조에 뛰어들면서 확실히 막걸리업계가 젊어졌다"고 했다. 젊은 감각을 기반으로 술을 만들어내다보니 막걸리 소비 시장도 젊은층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정 전통주교육기관이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교육훈련기관' 지정 사업과 '전문인력양성기관' 지정 사업이다.

◆일제강점기 거치며 가양주의 맥 끊겨
전통주에 관심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술에 대한 기초이론과 제조방법 등을 가르치는 교육훈련기관은 전국에 19곳이 지정되어 있다. 대구경북 지역엔 지정받은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은 없다. 대신 대구경북 지역에선 대경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우리술 전문인력양성기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양조장 운영자나 창업예정자를 위한 6개월 이상 장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전국에 6곳이 지정되어 있다. 대부분 대학이나 전문연구소이다.
대구경북지역에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이 없다보니 전통주에 관심있는 일반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3개월을 서울까지 왕복해가며 배우고 있다. 이번달 초 서울의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3개월 과정의 전통주교육을 마친 박인효(28)씨는 "대구경북에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이 없어 몇 개월 망설이다가 서울의 한국가양주연구소에 등록했다"며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는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만 소규모양조장 창업을 위해 또 다른 과정의 프로그램에도 등록을 해둔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교육훈련기관에서 전통주 교육을 받으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술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맛있는 술을 빚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이다. 요즘도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계신 집에서는 가끔 술을 빚는다. 하지만 술을 빚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맛과 향을 낸 술을 빚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얼마전까지 전통주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어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집집마다 전해 내려오던 가양주의 맥은 끊겼다. 1909년 세금징수를 위한 법이었던 주세법이 시행되면서부터 대형 양조장만 살아남고 가양주는 사라져갔다. 집집마다 재료가 달랐고, 빚는 방법마저 달라 맛과 향이 그만큼 다양했던 술은 없어져버렸다. 1960년대에 들어와선 주식인 쌀이 부족해 밀막걸리가 제조되면서 가양주는 더욱 힘을 잃었다.
당시엔 밀주(密酒)가 제조되면서 단속을 피해 빨리 발효시키고 빨리 마셔야만 하는 술이 주로 제조되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 가양주 제조가 허용되긴 했지만 제대로 만든 술이 나올 리 없었다. 아직까지도 가정에서는 여전히 술약이라고 부르는 효모를 얹어 판매하는 개량누룩을 사용한 술만 빚어오는 경우도 많다.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조차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저 할머니가 빚어오던 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다. 대형양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도 과학적인 이론지식이 없이 양조장에서 해오던 반복 작업과정을 통해 도제식으로 술을 만드는 기술만 전수되어 오고 있는 곳도 많다.

◆대구에서도 전통주교육 받을수 있어
다행히 10여 년 전부터 전통주 제조를 과학적인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배워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도 2012년부터 전통주 교육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술빚는 법과 함께 체계적인 이론까지 배운 사람들이 대거 양조장 창업에 뛰어들면서 최근의 전통주 붐이 일었다.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으로 지정받은 곳은 아니지만 대구에서도 체계적인 전통주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에서는 매주 1회 3개월 과정의 화요일 저녁반과 토요일 오전반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 중이다. 대상은 전통주 제조에 관심 있는 일반인이며 양조장 창업반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3개월 과정의 '우리술 맛있게 빚기' 정규반은 현재 6기 수료생까지 배출했으며 7기생을 모집 중이다.

지난 11월 말 3개월 과정을 마친 정소영(45)씨는 "술을 좋아하시는 시아버지를 위해 직접 빚은 술을 드리고 싶었다"며 "술맛과 향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너무 맛있게 나와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는 교육과정이 끝났지만 집에서 계속 삼양주와 당귀 등을 넣은 약용약주를 이양주법으로 빚어보고 있는 중이다.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에선 정규반 외에 전통주 체험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원데이클래스 형식으로 탄산막걸리 만들기, 이화주 빚기 등을 교육한다.
또 설날과 추석 명절을 앞두고는 차례주 빚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차례주는 맑은 청주를 얻기 위해 삼양주법으로 빚는다. 교육장에서 술이 되는 원리, 삼양주 레시피짜기 등 간단한 이론교육을 한 후 범벅으로 밑술을 하고, 이틀 후 1차 덧술, 다시 이틀 후 고두밥을 쪄서 식힌 후 미리 담근 밑술과 혼합하는 2차덧술 과정을 거친다.
한편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3개월 정규반과 원데이클래스 수강인원도 대폭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역특산주 양조장 준비중인 김천 3인방
"체계적인 전통주 이론과 다양한 술빚기 실습까지 마스터했죠"
지난 12월 5일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에서 3개월 과정의 '우리술 맛있게 빚기' 양조장 창업반 제5기 과정을 이수한 손형주(52)씨는 "여러 곳에서 단편적으로 전통주 교육을 받아왔지만 체계적이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며 "술에 대한 기초 이론에서부터 여러 가지 술 빚는 법을 실제로 실습을 통해 익히다 보니 양조장 창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함께 교육을 받은 이상숙(71)·손행민(50)씨와 함께 경북 김천에서 지역특산주 양조장 창업을 준비 중이다.
현실 여건 상 서울까지 가서 전통주 교육을 받기엔 여러 어려움이 많아 그동안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대구에서 전통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3개월간 매주 김천에서 기차를 타고 다니며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며 "이제 양조장 창업에 관해 어느 정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 양조장 창업과정에서 제일 먼저 정해둬야 할 사항이 술의 종류(탁주, 약주, 혼성주 등)와 만드는 방법, 생산량 등인데 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술을 빚어보고 자기들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대로 술을 빚기로 어느 정도 의견을 모은 상태다. 지역특산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보니 김천에서 생산되는 쌀과 기타 농산물을 부재료로 사용하는 건 당연지사다.

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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