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의 기술 전쟁이 공급망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기술이 갑(甲)이었던 시대는 갔고 공장이 갑인 시대가 왔다.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술국인 미국이 66조원의 천문학적 보조금을 주면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공장은 장비의 봉이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대만의 TSMC도 네덜란드의 노광장비 회사 ASML에는 꼼짝없이 고개를 숙인다. 지금은 핵심 장비가 '슈퍼 갑(甲)'이다.
그러나 장비가 있어도 실리콘웨이퍼, 희소가스 같은 핵심 소재가 없으면 반도체 공장은 세워야 한다. 공급망 사슬에서 기술이 갑이고 하청업체로 홀대받던 소재가 을(乙)이었던 시대가 뒤집어진 것이다. 미중의 공급망 전쟁이 만든 신풍속도이다.
요소수의 92%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요소수뿐만 아니라 반도체, 희토류, 항생물질, 리튬이온배터리의 대중 소재 의존도가 각각 40%, 52%, 53%, 93%에 달한다. 이번 두 번째 요소수 사태는 요소수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대중국 공급망 관리의 치명적인 취약점이 문제다.
2023년 들어 한국은 대중 무역에서는 적자 전환했으나 대미 무역에서 흑자가 늘어나 그나마 선방했지만 대미 흑자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의 기여가 컸다. 그러나 한국 무역흑자의 축인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전기차는 원자재 공급망에서 보면 중국의 함정에 깊이 빠져 있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누계로 반도체 원자재의 대중국 수입액 비중은 실리콘웨이퍼 35%, 크립톤 43%, 불화수소 62%, 제논 64%, 네온은 81%다. 배터리 제조용 산화리튬·수산화리튬이 82%, 인조흑연 93%, 니켈·코발트·망간 수산화물은 97%로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상반기 기준 전기차 전기모터의 성능을 좌우하는 희토류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는 86%에 달했다. 중국이 8월부터 수출 제한 조치에 들어간 갈륨과 게르마늄의 중국 의존도도 88%였다. "작은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한국의 대중국 소재 의존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중국의 비료협회 하나가 한국 산업을 올 스톱시킬 수 있는 상황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못 만들면 답이 없다. 사고가 나고 나서 늑장 대책회의를 하고, 중국의 협조나 바라는 식의 대응은 하나 마나다. 이제 요소수는 수익성이 문제가 아니고 중국 이외의 대체지를 못 구하면 적자가 나도 리쇼어링해야 하고, 보조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모든 물류 유통망이 중국의 농업 주기에 목매야 하는 불상사를 주기적으로 겪어야 한다
중국은 지금 반도체 하나를 빼고는 한국보다 못하는 것이 없는 나라로 바뀌었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에서 퇴출하는 것은 중국의 보복 때문이라는 것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포천 500대 기업에 미국보다 더 많은 수의 기업을 등극시킨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에 밀린 때문이다.
모든 기술의 시발점과 종착역은 같은 적이 없고, 산업의 국제적 이전 과정을 거쳐 한 번 지나간 산업은 역주행시킬 수 없다. 첫째 일할 사람이 없고, 둘째 부가가치가 안 맞고, 셋째 환경문제가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젠 중국을 '중동'(中東)으로 봐야 하고, 한국의 대중 외교는 자원외교로 빨리 방향 전환해야 한다. 중국을 중간재 수요자가 아니라 원자재 공급국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대응 방식을 바꾸어야 한국이 산다. 중국이 한국 중간재를 사는 관계에서, 이젠 한국이 중국에서 원자재를 사는 관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소비재 시장으로서의 중국은 범용 제품에서는 갓성비 가진 중국 기업이 넘사벽이고, 명품은 팔고 싶어도 팔 만한 브랜드가 없고, 대신 원자재는 중국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미국과 유럽에서 흑자를 내면 되지만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하면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나라든 모든 공급망을 소유한 나라는 없다. 공급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고 관리 능력이 실력이다.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중 간의 관계는 적(敵)이자 파트너인 프레너미(Frenemy) 관계다. 적이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 파트너면 속내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중국의 진정한 속내를 제대로 읽고 중국과 제대로 협상하고 문제를 풀어낼 서희(徐熙) 장군 같은 중국통(通)을 빨리 기르지 않으면 "작은 지푸라기 하나로 등뼈가 부러지는 일"이 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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