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오면 지하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에는 어김없이 희부연 얇은 먼지 더께가 앉아 있다. 한동안 운행이 강제 정지된 차가 주차장에서 함빡 뒤집어쓰고 있는, 아주 얇은 막처럼 보이는 한 꺼풀의 먼지 홑겹. 얼핏 보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앞 유리창의 와이퍼를 작동시키면 와이퍼가 닿은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는 둥근 호를 기준으로 선명하게 나뉜다. 오랜 부재의 증거. 움직이지 않고 한 장소에만 붙박여 정지되어 있음의 비생물성에 대한 강력한 환기.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천명관의 유명한 소설 〈고래〉에서 춘희와 같은 감방에 있던 한 여죄수가 한 말이다.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는 생활하고 있지 않음의 증거니까. 그래서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먼지가 고른 분포로 균일하게 덮여 있는 것들은 '움직인 흔적이 없음'을 불길하게 지시한다. 먼지는 그렇게 주인이 없는 대상을 금방 알아본다.
어디 차뿐일까? 사람살이가 없었던 집이 어떤 느낌으로 먼지와 공존하고 있는지는, 오래 손님이 들지 않은 숙박업소의 빈방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사람이 머문 흔적이 없는 그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하지만, 실상은 퀭한 듯이 생기가 없다.
이런 까닭에 먼지는 문학적으로도 죽음과 폐허의 상징으로 곧잘 다뤄져 왔다. "빈병에도/ 채워지는 먼지가 있다. 세월은 먼지를 먹고/ 배 부르다."(이윤학, 〈판교리 8-먼지의 집〉)라고 쓸쓸하게 시에서 먼지의 집을 노래하기도 하고, 두터운 먼지층으로 인해 고가의 청정복을 입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수명의 차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김효인, 〈미래인, 조안〉)를 소설 속에 그리기도 한다.
이와 달리 가수 김광석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먼지가 되어〉에서의 먼지는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울려 퍼지던 이 노래가 마침 귀에 꽂히면서 걸음을 멈춰 세웠었던 바로 그 대목.
작은 가슴을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먼지는 가볍다. 그래서 바람에 쉽게 날려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니 먼지가 되어야 가 닿고 싶은 당신 곁으로 언제든 마음껏 갈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고대 그리스어에는 때(시간)를 가리키는 말로 크로노스(Κρόνος)와 카이로스(Καιρός)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시간을, 카이로스는 경험적이고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생활의 부재를 그 쌓이는 시간만큼 정직하게 지시하는 먼지는 크로노스를, 원하는 대상을 향하여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환기하는 저 가벼운 먼지는 카이로스를 가리킨다고 하면 과장일까? 먼지를 닦는 일은, 모래시계처럼 차곡차곡 떨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시간(크로노스)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라 할 만하고, 먼지가 되어 날고 싶은 것은 저 무심한 시간을 초월한 자신만의 한때(카이로스)를 누리고 싶은 또 다른 안간힘이라 할 만하니 말이다.
정정순(영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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