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논설위원
헝가리 출신 영국 소설가 아서 쾨슬러가 스탈린 체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40년에 발표한 소설 '한낮의 어둠'은 공산 전체주의하에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잘 그렸다. 주인공 루바쇼프는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프라우다' 편집장과 코민테른 의장을 역임했던 거물 볼셰비키였으나 스탈린과 권력투쟁에서 패해 1939년 총살된 니콜라이 부하린이 모델로, 러시아 혁명 후 적백(赤白) 내전 당시 연대장, 사단장을 지냈고 당 중앙위원회 위원, 인민위원까지 지낸 노장 혁명가이지만 숙청당한다.
그 혐의는 반역과 최고 지도자 암살 모의. 조작된 것으로, 루바쇼프는 완강하게 부인하다 결국에는 모두 시인한다. 고문을 당해서도, 가족이 위협을 받아서도, 자백하면 사면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소설에서 심문관 클레트킨은 루바쇼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를 도와야 하오. 당신에게 말하건대 그건 당이 당신에게 요청하는 마지막 봉사요.… 당신 임무는 간단하오. 그걸 스스로 하는 거요.… 루바쇼프 동지. 난 당이 당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이해했으면 하오." 루바쇼프는 "알겠소"라고 대답하고, 반혁명 활동을 통해 그리고 외세에 봉사하며 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진술서에 서명한다. 범하지 않은 죄를 시인하는 것이 평생 충성을 바쳐 온 당에 대한 마지막 헌신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루바쇼프는 법정에서 당이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죄를 인정하고 인민들에게 반혁명 세력의 위험을 경고한 후 처형당한다.
우리 사회 좌파의 이른바 '조직 보위(保衛)' 논리도 이를 빼다 박았다. 우리 편의 잘못은 무조건 감싸거나 모른 체한다.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의 '암컷이 설친다'는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침묵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막말이 나온 지 사흘째인 22일 당 여성전국위원회가 당의 지침에 떠밀려 최 전 의원의 사과와 반성을 요구한 성명을 냈을 뿐 어떤 여성 의원도 막말을 비판하거나 사과하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여성 인권 운동 경력으로 금배지를 단 의원도 여럿 있다. 이들의 침묵은 끔찍한 윤리적 타락이다. 조직 보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는 '보디랭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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