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맡긴 마약류 의약품 관리…점검 규정 없고 관리 인력도 부족
통합 시스템 입력하게 돼 있지만 관리는 결국 병·의원 몫
대구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 A씨와 교제하던 B씨는 최근 A씨와 이별하며 자신의 집에 보관하던 A씨의 짐을 정리하다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A씨가 근무하는 병원 이름이 인쇄된 봉투 안에는 모르핀, 졸피뎀 등 마약류 의약품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놀란 B씨는 해당 병원에 이 사실을 알리고 약품 회수를 요청했다.
병원 측은 뒤늦게 A씨가 마약류 의약품과 병원 비품을 빼돌린 정황을 확인하고 A씨를 해임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반출 기록을 찾지 못해 정확한 유출 시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마약류 의약품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의료기관의 마약류 의약품 관리·감독망이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마약류나 향정신성의약품의 사용 이력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있지만, 정작 정확한 사용 이력 입력이나 반출 후 관리는 사실상 개인의 '양심'에 맡기고 있어서다.
이는 간호사나 개원의가 전담하는 동네의원부터 대형 상급종합병원에 이르기까지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마약류 관리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또는 사용할 때 품명과 수량, 취급연월일, 구입처, 재고량, 일련번호와 투약 대상자의 성명 등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토록 돼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시스템에 기록한 내용이 정확한지 여부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의료기관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마약류 의약품 사용 이력을 기록할 의무는 있지만, 제대로 기록하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은 의료기관 자율에 맡기고 있다.
마약류 의약품을 취급하는 직원이 다른 목적으로 약품을 몰래 빼돌려도 즉시 알아낼 방법이 없는 셈이다.
간호사가 마약류 의약품을 빼돌린 대학병원측도 신고를 받기 전까지는 서류 상으로는 빼돌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약제부에서 병동으로 약이 전달되기까지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으로 통제가 가능하다. 문제는 병동에서 환자에게 직접 투약되는 과정이다.
대학병원 약제부에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약사는 "병동에 약품이 남았을 때 의사나 간호사가 반납하지 않은 채 사용했다고 입력해 버리면 알 방법이 없다"면서 "수많은 병동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병·의원의 마약류 의약품 취급을 관리·감독해야하는 보건소 또한 의료기관의 양심과 교육 정도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시내 한 보건소 관계자는 "업무 담당자가 1명밖에 없는데 관련 민원 처리나 의약품 파기 업무만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폐업한 달서구 유천동 한 동네의원의 경우 폐업 당시 임의 폐기한 마약류 의약품이 450개에 이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의료계는 허술한 마약류 의약품 관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료기관 차원의 강력한 대처와 함께 정부의 감시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구시내 전직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차원에서 복약 지도를 강화하는 동시에 남은 약품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는 전반적인 감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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