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6억5천만원 날릴 위기" 신혼부부 등 43명, 신축 아파트 분양 피해

입력 2023-11-26 16:41:05 수정 2023-11-26 20:40:30

중구 남산동 222가구 신축 아파트 시행 사실상 무산
분양 계약자 43명· 분양 선수금 16억5천만원 공중분해 위험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사업 방식도 피해 키운 원인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방식으로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신축 아파트 조성 사업을 추진하던 시행사의 대구 동구 신천동 사무실 전경. 독자 제공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방식으로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신축 아파트 조성 사업을 추진하던 시행사의 대구 동구 신천동 사무실 전경. 독자 제공

대구 부동산 경기가 극심한 침체를 겪으며 시행 중단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중구 한 신축 아파트와 분양 계약을 체결한 43명은 계약금으로 낸 16억5천만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고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신혼부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돌쟁이 아기를 둔 36살 동갑내기 신혼부부인 A씨는 지난해 2월에 도시철도 2호선 청라언덕역 근처에서 신축 아파트 단지 조성을 추진하던 시행사와 전용면적 59㎡ 아파트에 관한 분양계약을 맺었다. 매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계약 담당자의 말에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5천500만원을 계약금으로 납입했다.

시행사는 올해 1월 공사를 시작해 2025년까지 중구 남산동 일대에 지상 25층, 222가구 규모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착공 시기로 예고했던 1월이 지나도 공사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극심한 경기 침체에 따라 사업이 늦어진다고만 안내했다.

기존에 거주하던 곳의 전세기간 만료가 임박했던 A씨는 올해 5월쯤 계약 취소 의사를 밝혔으나 시행사는 취소는 어렵고 사업이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달란 말만 되풀이됐다. 그 사이 시행사 전화는 수신이 중단됐고 분양 홍보관은 폐쇄됐다.

A씨는 "남편과 함께 16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생 모은 돈인데 살길이 막막하다"며 "살던 집은 월세로 지내다가 보증금도 다 차감됐고, 심한 우울증에 아이와 사는 것도 버겁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처럼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분양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계약자들이 수소문 끝에 지난 13일 대구시 도움으로 분양자 목록과 시행사의 재무제표를 확보한 결과 분양자는 43명이었고 피해가 우려되는 분양 선수금은 16억5천400만원이었다. 계약자 가운데 20대도 2명이 포함됐으며 30대는 6명, 40대 7명, 50대 15명, 60대 이상 13명이었다.

해당 사업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아파트' 방식으로 추진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됐다.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아파트란 협동조합기본법을 근거로 분양 계약자가 조합원이 되어 계약금(가입비)을 내고, 시행사는 그 돈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지금처럼 불황기에는 부동산 시행 부실이 온전히 분양자에게 전가되며 계약금이 공중분해될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사업비로 지출된 협동조합 가입비의 일부는 돌려받을 수 없고, 관련 소송에서 승소해도 계좌에 잔액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기준 시행사에 남은 현금성 자산은 보통 예금 886만원뿐이다.

A씨는 시행사 대표를 지난 7일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일부 조합원은 계약금 반환에 관한 민사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반면 시행사 측은 경기가 나빠서 사업이 늦어진 것이지 사기로 분양자를 모집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향후 부동산 신탁사에 토지개발신탁을 맡기는 개탁 절차를 진행시키거나 사업권 전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겠다고도 했다.

법인 계좌에 잔액이 남아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6개월간 분양자 모집을 위한 홍보관을 운영하는 경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시행사 대표는 "계약금이나 밀린 광고비, 대행 수수료 등은 책임지고 수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