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인형(doll)은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든 장난감이나 예쁘고 귀여운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지금은 인형이라고 하면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이전에는 돌이나 나무 혹은 종이나 천 등으로 인간과 유사한 형상을 만들어 주술이나 전통의례를 위한 매개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기도 했다. 이처럼 인형은 인간의 삶 속에서 흙으로 빚은 인간의 탄생이란 신화에서부터 예술적인 조형물을 통해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는 대상이 됐다.
산업화 이후에는 특정 소재로 브랜드화한 바비(Barbie) 인형과 실험용 인체모형이나 의복을 입혀서 진열하는 마네킹 등, 인형의 유형적 변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처럼 인간과 인형의 관계는 관습과 문화의 상징이나 효용성을 갖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억압이나 통제의 대리물이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인형과 모형(figure)은 단지 어린아이의 장난감 문화를 너머 인간 중심 문화코드의 상징이자 인간의 소외와 욕망을 대리하는 산업화된 유사인체로 소비되고 있다. 또한 그 혹은 그녀는 스크린을 통해 시각적 재현으로 진화해 영웅으로 탄생하고 있다. 이 영웅은 나약한 신체이자 유기체의 부분결핍을 채우는 시·촉각적 대리물로 선과 악의 저편에서 스크린이나 모니터를 통해 영웅적 캐릭터가 된다. 디지털 기술이 구현하는 스크린 속의 영웅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시각적 재현을 만들어 간다.
이러한 시각적 재현은 판타지를 통해 결핍을 억제하거나 대리하는 욕망의 장으로 확장해 간다. 근대사회에서 인형과 모형이 대량생산과 획일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대중문화의 상징성을 만들어 가는 마블(Marvel)영화의 시각적 재현은 다수의 영웅적인 주인공을 통해 더 강한 힘의 욕망을 표상한다. 이는 근대의 기념비적인 조각상이 자리한 역사적 맥락의 실존적 의미가 사라진 탈맥락화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복제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라면, 길을 가다가 인형이나 모형으로 만든 나와 똑 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만난다면, 아마도 당혹함을 너머 섬뜩한 낯설음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섬뜩함은 21세기 AI시대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보다 앞서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섬뜩함은 뉴스에서 듣고 보는 잔혹한 사건들이다. 마치 인형이나 모형이라는 대리물도 아닌 불특정 개인이나 다수를 향한 폭력의 잔혹함이다.
어느 시대나 주술이나 관습 혹은 예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적 재현을 필요로 했다. 21세기 AI시대 역시 과거를 품고 미래를 향한 시각적 재현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 여기 현재의 삶이 보고 감각하는 시선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인형과 모형의 시각적 재현에 투영된 시선의 교차 속에서 안목 성장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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