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함께 나누고픈 북&톡] 현실엔 스킵 버튼이 없다…차근차근 걸어가는 힘

입력 2023-10-30 06:30:00

삶이란 디딤돌과 걸림돌이 교차하는 것…'귤의 맛'
달의 산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얻은 깨달음…'개, 늑대, 그리고 하나님'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동영상을 볼 때 건너뛰기 기능은 참 편리합니다. 지루한 서사는 생략하고 불편한 장면은 지나칩니다. 궁금증은 해소되고 시간은 절약됩니다. 우리의 삶도 건너뛰기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녀들은 공부나 시험의 순간을 건너뛰고 싶어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아마 폭풍 같은 자녀의 사춘기 시절을 건너뛰고 싶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은 '차례가기'입니다. 뛰어넘지도, 건너가지도 못하고 내 걸음의 모든 순간을 겪어야만 다음 한 발을 뗄 수 있습니다. 시간을 들이고 용기를 내어 딛는 한걸음에 힘이 될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귤의 맛'의 표지

◆스스로 견뎌내는 위대한 시간의 힘

"귤이 이렇게 달다고?"

사춘기 소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제주도 귤밭 나무에서 주홍빛으로 익은 귤은 놀랄 만큼 달고 맛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지금껏 마트에서 산 귤만 먹어보았습니다. 초록빛일 때 수확돼 상자 안에서 익어간 귤 말이지요.

책 '귤의 맛'(조남주 지음)은 갈등과 고민을 통해 성장하는 네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성격도, 성적도, 꿈도 다른 네 친구는 고교 입시를 앞두고 미묘하게 엇갈리며 각자가 가진 상처를 드러냅니다. 아픈 동생에게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양보하는 A의 의젓함 뒤에는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단짝 친구와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진 B는 우정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C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혼란스럽습니다. 집단따돌림을 당한 D의 상처는 언제나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들도록 깊고 아픕니다.

가족, 공부, 가정 형편, 친구… 모두 우리가 살아가며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때로는 디딤돌이 되고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요. 부모는 늘 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걸림돌을 치워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면 상대방 부모나 교사를 찾아가 해결해 주려 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어려워하면 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지요. 진로를 고민하면 앞장서서 진로를 찾아주고, 경제적으로 기죽지 않게 하려고 형편보다 무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 몫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려움과 부족함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길러주고, 사랑과 격려는 감사할 줄 아는 지혜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용기와 지혜는 내 앞의 디딤돌과 걸림돌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디딜 수 있게 합니다. 이야기 속 네 소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물론 처음이라 서툴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울고 웃고 다투고 후회하고 삐치고 화해하는 네 소녀의 우정과 성장 역시 현재진행형입니다. 당장 내일의 일조차 예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려 하는 네 소녀의 모습은 햇살, 바람, 비를 온전히 받고 달게 익어가는 귤처럼 기특하고, 꽉 찬 속이 기대됩니다.

'개, 늑대, 그리고 하나님'의 표지.

◆삶이란 내가 선택한 모험

여기 충성스러운 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주인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행복한 개.

어느 날 주인은 낯선 곳에 개를 버려두고 떠나갑니다. 홀로 남겨진 개는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야 할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주어진 삶에 익숙해진 개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삶은 고난이지요.

'개, 늑대, 그리고 하나님'(폴코테르차니 지음)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먹이고 재우는 존재를 찾기 위해 달의 산으로 향하는 개의 이야기입니다. 달의 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합니다. 몇 번이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겪지요.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잠자리를 내어주는 자연, 그들만의 지혜와 규칙을 가진 늑대 무리 덕분에 마침내 개는 달의 산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자신의 여정에 신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함께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해 실천하는 삶은 모험입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고 두려워지겠지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 앞의 한 걸음을 내디딘다면 세상은 나를 위해 넓은 품을 내어줄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