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인세이셔블 연극리뷰] 한국사회 산업재해 잔혹사를 기억하는 방식, 괴물이 되어버린 노동자의 몸 <괴물 B>

입력 2023-10-25 06:30:00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 평론가)

안전보건공단이 밝히고 있는 재해사례는 건설(3,967) 조선업(369) 제조업(1,293), 서비스업(316), 공공기관사례(105)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재 수치인 만큼, 한국 사회 수면 아래 비공식적으로는 더 많을 것이다. 여전히 산업재해 사고는 기계 더미에 쓸려 들어 갈 정도의 비참한 죽음 정도만 뉴스로 보도가 되고 있다. 산업재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괴물 B>(작, 한현주 연출 손원정)는 노동자들의 서사이면서도 한국 사회의 산업재해 잔혹사다. 연극은 한국 사회 근현대사 산업재해 현장에서 죽음으로, 육신의 절단으로 사라져 우리의 기억으로부터 소멸되어가는 산업재해 문제를 통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희곡이 흥미로웠던 점은 재해 사고로 훼손된 몸으로 부터 '괴물 B'를 탄생시켜 노동현장의 죽음들을 기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물 B>는 초연(2021,알과핵 소극장)을 거쳐 올해 공연(서강대 메리홀)은 재공연이다.

◆ 산업재해의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괴물B'의 육신(肉身)

한현주 작가는 구의역과 태안발전소 청년이, 그 몸이 잊히질 않아 괴물 B가 꿈틀거리는 2018년도에 초고를 썼다. 작품에 투영된 죽음은 소멸과 망각될 수 없는 참혹한 몸의 역사로 각인되어 있다. 그 기억은 핏물과 통증을 지워낼 수 없는 산업재해 역사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부평의 한 폐공장, 파산한 디트로이트 시티의 폐공장을 걸으며 작가는 통증과 고통의 육신으로 숨통을 조여오는 괴물 B의 몸을 상상하며 작가의 몸으로 죽음들을 감각하며 아마존과 쿠팡의 물류대, 건설현장의 비계위에, 배달원의 스쿠터 위에 괴물의 육신이 되어버린 괴물B를 썼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로 이 작품은 고통과 통증으로부터 너덜너덜해진 육신의 죽음이 되어서도 근로 현장을 떠날 수 없는노동자들의 몸이 된다. 조선, 건설, 제조, 서비스업, 전기, 일반노동의 산업재해로 몸이 잘려 나가고 훼손된 손가락, 절단된 다리는 사출 금형 기계와 포크레인, 달리는 열차의 쇳덩이에 짓눌려 있는 육신의 조각으로 살아가는 괴물B는 불멸의 몸이다. 이 지점부터가 연극적 상상으로 채워진 허구의 캐릭터이면서도 사라져간 안전보건공단에 적시되어 있는 수천 건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몸이다. 괴물B는 치유할 수 없는 한국 사회 산업재해의 역사이면서도 훼손된 노동자들의 몸의 조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품은 괴물 B가 1903년도에 통조림공장에서 절단된 엄지손가락부터 산업화 자본주의를 거쳐 현재로 이어지는 산업재해의 죽음으로 소멸할 수 없는 육신에 붙어 있는 재해 노동자 몸으로 살아간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만화경처럼 느껴지는 환타지적인 캐릭터가 연극적인 상상을 자극했는데 공연에서는 괴물 B 또는 B들의 몸을 통해 수많은 산업재해 노동자의 온전하지 못한 몸을 투사하고 현재에도 괴물처럼 살아가는 재해노동자들을 상징하는 메타포는 한국 사회 노동으로부터 죽어간 몸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로는 괴물 B의 몸으로부터 기억된 재해 현장이나 여전히 구천을 맴도는 노동자들을 소환하기도 하면서 괴물 B의 몸에 붙은 죽음의 시간과 기억들이 그려진다. 죽음의 산업재해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은 한국 사회 자본주의 오작동의 기계음으로 죽어가거나 실종된 노동자들의 육신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산업재해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몸이면서도 그 죽음의 통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 '산업재해 죽음의 역사' 괴물B의 비극

"작년 한 해만 해도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업무상 질병에 걸린 사람과 부상자는 십만 명이 넘습니다. 산업재해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열악한 나라도 수없이 많죠. 산업혁명 이후로만 따진다고 하더라도." (유 선생, 지춘성 분) 연극의 구조가 조립되지 않은 서강대 메리홀 대공연장의 자연 환경을(벽면)을 그대로 활용한 무대는 자동차에 들어갈 스테인레스강 파스너를 생산하던 폐허가 된 금속가공 공장이다. 재해의 죽음으로부터 시간이 멈춘 듯한 내부구조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청년의 죽음의 무덤이 된 것처럼 롤러 컨베이어 벨트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는 화재로 전소된 것처럼 화력을 토해낼 것 같은 발전소의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죽음으로 폐허가 된 공장에 산업재해로 구천을 맴도는 망령의 노동자들은 회사 유니폼을 입고 "부러졌어", "끼었어", 내 머리, 심장, 다리, 무릎, 손가락이" "타들어가"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공간을간을 누르는 비명과 망자의 무감각한 움직임으로 하나, 둘씩 컨베이어 벨트와 폐허의 바닥으로 쓰러지고 괴물 B가 공장 내부로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이 장면부터 괴물 B(이상흥 분)의 존재는 연극이면서도 현실적인 산업재해의 현장임을 드러내고 있듯 무대는 현실과 비현실적인 일루전이 이질적으로 충돌되고 있다.

괴물 B와 스몰 b는 프롤로그에서 죽음으로 쓰러져 노동자의 몸이며 괴물 B의 주변을 떠도는 기계에 깔린 자(B1), " (중략) 내 젖가슴이 녹고 있다. 이거 함 뵈라. 진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이가! "화재로 죽어간 여공(B2), 자동차와 청소차의 분쇄기 오작동으로 망자(B3)가 되어버린 유령들이다. 이들 노동자의 인생은 무대로 흐르는 남인수의 '사백환의 인생비극'이다. 폐공장으로 배달노동자인 연아(최지혜 분)가 들어서고 괴물 B와 만나면서 시작된다. 무대에서 배치되는 중심 서사의 방향은 다섯 가지다. 작가적으로 구현된 괴물 B로 투사되는 유령처럼 배회하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죽음의 역사이다. 두번째로는 배달(아르바이트)하며 살아가는 연아 노동의 현실과 실종된 아빠의 존재, 그리고 괴물 B의 부탁으로 세 명의 존재(괴물 B1, B2, B3)를 찾아가며 참혹한 죽음과 산업재해 사고를 환기하는 장치들이다. 세 번째로는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이 지게차에 끼여 사망한 뒤 노동 현장 개선을 위해 모임을 이끄는 유 선생을 통해 그려지는 한국 사회 노동 현실의 문제이며 마지막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의 몸이 된 스몰b와 신부(조성현 분)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은 괴물B의 육신이 되어가는 절망의 세상이다.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 희곡의 괴물B, 무대의 괴물B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노동자의 몸이 기계에 끼여 폐허가 된 공장은 연아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비밀장소이다. 작가는 손가락이 잘린 1900년대 근대 통조림공장의 노동환경에서 연아가 배달일을 하는 현재 시점까지 관통하고 있는데, 비밀 아지트에서의 휴식은 장소를 떠날 수 없어배회하는 산업재해 노동자처럼 연아의 배달 노동도 과로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 노동 현실의 구조를 투영하면서도 실종된 아버지를 통해 투사되는 지점은 한국 사회 불법 정리해고 역사이기도 하다. 실종된 연아 아버지는 투쟁하는 피켓 라인을 넘어 공장으로 복귀하는 버스에 오른 뒤 흔적 없이 사라졌고 마지막 장면은 죽음의 무덤이 되어 버린 폐공장을 울리는 것은 죽음을 짓누르는 무서운 굉음의 망치 소리다. 마치 제2의 괴물 B들을소환하듯 말이다. 산업재해의 잔혹사를 현실적인 공간구조의 비현실적인 캐릭터, 유령처럼 배회하는 망자들의 죽음, 연아와 유 선생 그리고 B1, B2, B3의 죽음의 시간까지 때로는 현실적인 장면과 연극적인 구조로 대비시키면서 무대는 안정적이지 않았고 환경 그대로의 극장구조를 활용한 연출적인 의도를 생산적으로 살려내지 못하면서 희곡의 괴물 B는 무대에서 구현되는 괴물 B를 쏟아내지 못했다.

작품에서 내재하고 있는 문제를 무대 공간으로 타격하지 못한 것은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고 그사이에 소환되는 재해 노동자들(신부, 유 선생, 과거 재해 현장, 60년대 신발공장 화재 사건 등) 과 소환되는 지점들이 매우 드라마틱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도 연극적인 구조와 형식을 걷어내면서 괴물 B의 서사를 현재 진행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공간도, 시간도, 사건도, 인물의 관계도 재해 현장도, 매우 평면적으로 다가왔다. 연극적인 재현성보다는 산업재해 사회적인 문제가 괴물 B의 손가락이 잘려 나간 1903년도나 현재에도 달라질 게 없는 현실을 그려내는 것이었을까. 희곡 설정은 비현실적인데, 무대는 현실적인 구도로 배치하면서 방향성이 모호해졌다. 희곡을 읽으며 기대한 만큼 연출적으로 파동이 없었다. 그럼에도 서강대 메리홀 공연을 버텨내고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두성, 지춘성, 이영주, 이은정, 이상흥, 조성현, 최지혜,이승혁등의 배우들의 역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의 죽음이 자본으로 은폐되는 현실과 노동 현실의 인식변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괴물 B는 불멸의 존재가 될 것이다.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극단 코끼리만보, 포토그래퍼 김솔 제공.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