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국민은 늘 무조건 옳지만은 않았다

입력 2023-10-23 20:02:40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했다. 큰 표 차로 진 게 꽤나 아팠던 모양이다. 민심을 얻으려면 오만하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좋은 자세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포퓰리즘으로 가는 길을 여는, 대중에 대한 아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은 늘 무조건 옳지만은 않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선거로 권력을 안긴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은 옳았나? 페론을 선택해 만성적 국가부도의 지옥문을 연 아르헨티나 국민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국민은 또 어떤가? 워싱턴포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재임 중 트럼프는 무려 3만573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20년 4·15 총선을 되돌아보자. 대중은 더불어민주당과 그 비례 정당에 개헌 빼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180석을 몰아 줬다. 저소득층을 더욱 빈곤으로 몰아넣은 소득주도성장, 반기업 친노조 정책, 전기료 폭탄을 예약한 탈원전, 조국 사태가 보여 준 공정과 상식의 파괴 등에도 그랬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발을 묶고 있는 힘이 여기서 나왔다. 이런 선택을 한 우리 국민은 옳았는가?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유력 언론사 주필이라는 사람은 "(민주당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타적 공감 능력을 갖췄다"고 했고 "남북 화해와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은 허점이 많지만 유권자 다수가 동기를 이해했다"고 했다. '묻지마 퍼주기의 포퓰리즘'을 '이타적 공감 능력'으로, '남한 국민을 북핵의 볼모로 잡힌 가짜 평화'를 '남북 화해'로, '국가부채 1천조 원의 후대(後代) 착취'를 '사회적 약자 보호'로 둔갑시킨 아부였다.

이런 사실은 현대 대중 민주주의가 하나의 신화 위에 서 있음을 말해 준다. 선거에서 국민이 내린 선택은 어떤 것이든, 설사 민주주의의 장기적 죽음을 잉태한 것이라도 '위대하고 현명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소가 웃고 개가 하품을 할 소리이다. 미국 독립혁명을 지지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비조(鼻祖) 에드먼드 버크는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타락한 정부로 가는 안성맞춤의 길이다"라고 했다. 4·15 총선 이후 문재인 정권이 보여 준 민주주의 파괴는 이를 실증했다.

1인 1표 보통선거 민주주의에서 대중은 현민(賢民)과 우중(愚衆)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적 존재이다. 대중은 잘못된 선택도 하지만 옳은 선택도 한다. 이런 두 얼굴 중 어디에 정치적 판돈을 거느냐가 포퓰리즘으로 타락할지 아닐지를 가른다. 문 정권은 우중에 집중했고 우중은 영합했다.

이로 인한 적폐를 쓸어 내고 나라를 다시 반듯하게 세우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신념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은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큰 표 차로 졌다고 대중에게 아부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국정 철학과 방향의 후퇴가 아니라 민심을 더욱 세밀히 살피고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차원이라면 분명히 의미가 있다.

야당과 언론은 구청장 보선 패배가 윤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때문이며 고치지 않으면 내년 총선 전망도 어두울 것이라고 한다. 귀를 기울이되 함몰되지는 말아야 한다. 신념 실천에는 '불통'과 '독단' 프레임이 씌워지기 십상이다. 억울하지만 걷어 내는 수밖에 없다.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진정을 대중에게 호소하고 지지를 설득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가능한 한 자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 방향을 소상히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적극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