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두 번의 화재로 무너진 삶…치매 걸린 엄마만큼은 무사해야할텐데

입력 2023-10-24 06:30:00

첫 번째 화재로 공장 잃어…어렵게 재기했으나 두 번째 화재로 또 가게 잃어
남편마저 일찍 세상 떠나 생활고 속 닥치는 대로 일하며 두 자녀 뒷바라지
홀로 남은 엄마, 낡고 더러운 상가건물서 지내…연탄난로 하나로 겨울 버텨야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가건물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진호순(가명·83) 씨가 지난 20일 자기 집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호순 씨는 치매로 인해 인지 기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윤정훈 기자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가건물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진호순(가명·83) 씨가 지난 20일 자기 집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호순 씨는 치매로 인해 인지 기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윤정훈 기자

"나 왔어, 엄마."

과묵한 등에 대고 의미 없는 인사를 건넨다. 이후 신발을 신은 채 어두침침한 방 안으로 들어선다. 거실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엄마의 시선은 방 한편 처박아 놓은 우산 통을 향해 있다. 묘한 위화감이 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역시 우산이 늘었다. 엄마가 또 집 근처를 배회하며 주워 온 듯했다. 한 소리 할 요량으로 입을 열려다 그냥 관뒀다. 삐죽빼죽 솟은 우산들을 보고 있으니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늘 비가 오길 바라시는 마음에…'

청소 시작 전 베란다 문을 여니 소슬바람이 전신을 휘감는다. 올해도 어김없구나. 불과 친해져야만 하는 계절이 오고 있었다.

◆두 번의 화재로 잿더미가 된 아빠의 공장, 엄마의 가게

계보영(가명·60) 씨는 초등학교 1학년까진 부산에서 살았다. 당시 아빠는 작은 스펀지 공장을 운영했다. 1층이 공장이고, 2층에서 부모님, 두 오빠와 보영 씨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았다. 불이 난 건 그해 가을, 1층 공장에서였다. 직원 중 하나가 스펀지에 불을 붙이는 실험을 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공장도, 집도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빈털터리가 된 보영 씨네 가족은 대구로 이사했다.

혼자 살기에도 비좁은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는 다시 일어섰다. 아빠는 작은 스펀지공장을 다시 운영하고, 미싱 기술이 있었던 엄마, 진호순(가명·83) 씨는 서문시장에서 수예점을 열어 아빠 공장에서 만든 스펀지로 담요나 방석 등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좋아 단골손님도 제법 있었다. 보영 씨는 학교를 마치면 곧장 수예점으로 가서 엄마를 도와 가게를 봤다. 부모님도 활기를 되찾은 것 같고, 모든 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생각을 비웃는 듯 '그것'은 다시금 찾아왔다. 두 번째 화재는 엄마의 수예점을 덮쳤다. 그날도 보영 씨는 오후 4시쯤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소방차 수십 대가 즐비한 모습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뛰었다. 시장 입구에 다다를수록 익숙한 공기와 냄새가 온몸을 감쌌다. 입구에 도착하니 절규하는 사람들 틈에 서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

두 번째 화재 이후엔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다. 수예점이 사라지면서 스펀지공장도 문을 닫아야 했다.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어 보영 씨는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뒤 식당 서빙, 다방 커피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다방에서 손님으로 만난 남자와 24살에 결혼했다. 부부가 함께 양복점을 운영하며 그나마 순탄하게 사는 듯했으나 남편이 35살 젊은 나이에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보영 씨는 이때부터 홀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1학년 딸을 키워야 했다. 아이들은 친정에 맡겨두고 분식점, 통닭집, 목욕탕 등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돈을 벌었지만, 늘 형편은 쪼들렸다.

◆연탄난로에 의지하는 치매 걸린 엄마… 무너지는 자식의 맘

현재 보영 씨는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며 생활고로 진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끝에 무사히 두 자녀를 성인까지 키워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제 홀로 남은, 기억이 온전치 않은 엄마를 돌볼 차례였다. 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온 건 7년 전쯤부터였다. 기억력 감퇴뿐 아니라 더운 여름에 두꺼운 패딩을 껴입거나 어디선가 자꾸 물건들을 주워 와 집에 쌓아두는 등 여러 이상행동도 나타났다.

아빠는 40대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던 작은 오빠도 6년 전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엄마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큰오빠와 보영 씨뿐이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저녁까지 목욕탕에서 보내야 하는 보영 씨와 마찬가지로, 큰오빠 역시 병원에서 이송 관련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여유가 없다. 다행히 엄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로 인정돼 평일 낮 동안엔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보영 씨가 목욕탕 휴무일인 매주 화요일, 큰오빠는 일요일마다 엄마 집에 방문해 가사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집 위생 상태가 엉망이다.

현재 엄마가 머물고 있는 상가건물은 지어진 지 50년도 더 됐다. 이곳 2층에 있는 엄마의 집 역시 폐가 수준이다. 신발을 신고 생활할 정도로 장판이 더럽고, 벽지도 군데군데 찢겨 나가 까만 시멘트벽이 고스란히 보인다. 화장실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전기밥솥으로 끓인 물을 쓴다. 난방시설도 없어 연탄난로 하나로 매번 겨울을 버텨야 한다. 옷을 아무리 겹겹이 껴입어도 가픈 베란다 문짝을 뚫고 들이닥치는 외풍에 뼈까지 시리다. 더 큰 문제는 어머니의 인지 기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어 연탄난로를 사용하다 자칫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제 불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우선 보일러라도 깔아드리고 싶지만, 보영 씨 또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라 비용이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저녁 6시 반. 목욕탕 일을 마친 뒤 엄마를 찾은 보영 씨. 엄마가 주워 온 물건들을 치우고, 집 안 가구를 닦는 등 지친 몸을 이끌고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나 아무리 치우고, 닦고, 먼지를 털어내도 기분은 저조하다.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작 해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타들어 가는 보영 씨 속도 모르고, 불과 친해져야만 하는 계절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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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못 이기고 보육원 탈출해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하다 겨우 가정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 돌보고 지적장애 아내·조카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 씨에게 2,690만원 전달

어린 나이부터 온갖 고생을 하다 겨우 가정을 이뤘으나 아픈 장모님과 지적장애 아내·조카를 보살피느라 고달픈 조민상(매일신문 10월 10일자 10면) 씨에게 2천690만3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 10만원 ▷프루스트(한유미) 5만원 ▷김옥선 20만원 ▷김영수 5만원 ▷방순옥 4만원 ▷권규돈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신종욱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진만 1만원 ▷허영재 1만원 ▷'석미혜(계대)'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 수면 중 심장마비로 눈감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 갈수록 폭력 성향 짙어지는 자폐 아들 키우느라 힘겨운 임숙현 씨에게 2,111만원 성금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데 갈수록 폭력 성향이 짙어지는 자폐 아들을 키우느라 더 힘겨운 임숙현 씨에게(매일신문 10월 17일자 10면) 씨에게 43개 단체, 114명의 독자가 2천111만6천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장현식)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제일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고려실리콘산업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태릉표구화랑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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