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삶이라는 고통

입력 2023-10-19 11:35:48 수정 2023-10-20 19:03:13

한대수 지음/ 북하우스 펴냄

한국 뮤지션의 대부이자 사진작가 한대수. 매일신문 DB
한국 뮤지션의 대부이자 사진작가 한대수. 매일신문 DB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라는 곡을 선보인 국내 최초 싱어송라이터이자 포크-락 음악의 대부로 우리에게 익숙한 한대수. 그가 사진작가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삶이라는 고통'은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한대수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흑백·컬러 사진을 엮은 사진집이다. 2016년 뉴욕으로 건너간 한대수 작가는 그간 쌓아둔 수십 만 장의 네거티브와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면서 사진집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공개한 적 없는 희귀 흑백·컬러 사진 100여 점이 담겼다.

그의 말을 빌리면, 1960년 필름 카메라를 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에 카메라가 떠난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그는 미국 뉴햄프셔주립대 수의학과를 중퇴한 후, 뉴욕 인스티튜트 오브 포토그래피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체제 전복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든 곡이 금지된 뒤 뉴욕으로 건너갔을 때는 밥벌이를 위해 상업 사진가로 오래 일하기도 했다. 이번 사진집은 그의 오래된 숙원을 일흔다섯이라는 나이에 마침내 이룬 것이자, 40여 년간 그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작품 세계를 한차례 집대성한 것으로 더욱 의미가 있다.

작가는 "필름 이미지는 아웃라인이 매끄럽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과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그 때 내가 쏟아부었던 피와 땀, 눈물이 느껴진다. 때로는 포커스가 안 맞더라도 내 인생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여드린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즐기시길"이라며 출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사진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진들은 1960년대 말 뉴욕과 서울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다. 동시대라는 게 믿기 어려운, 1960년대 뉴욕과 서울의 대조적인 풍경은 당대의 문화와 역사의 일부를 보여준다. 자유분방한 활기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빈민의 실의가 뒤섞인 뉴욕의 모습, 개발도상국이 되기 전 가난한 도시민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서울의 모습은 기록 사진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사진들은 문화적으로 더 앞선 뉴욕에 대한 동경, 식민지 시대와 분단의 비극을 겪은 힘 없는 나라에 대한 연민, 옛 시절에 대한 향수 등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그 시대의 복식, 건물, 거리 풍경 등을 보는 재미는 덤이다.

이외에도 사진집에는 모스크바, 파리, 탕헤르, 바르셀로나, 쾰른, 베이징 등 세계 각 도시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진도 담겼다. 카메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삶의 터전을 잃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노숙자, 거리의 악사, 노인들이다. 그가 찍은 거리의 사진들은 곧 그가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는 작가이자, 인간이 처한 어둠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작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하고, 나 자신 또한 아이러니다. 고통과 비극이 나를 음악가로 만들었고, 글을 쓰게 만들었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사진집 제목이 왜 '삶이라는 고통'인지 설명해주는 문장이다. 312쪽, 3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