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5천만 명이 넘는 인류사 최대 살상극으로 기록된 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은 파시즘이었다. 파시즘이 유래된 이탈리아어 파쇼(fascio)는 '결속'을 뜻한다. 결속은 집단 구성원의 동질성을 배양하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무형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다. 그러한 결속이 6년간 핏빛 광기의 전쟁을 촉발한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 이유는 바깥 세계의 공적을 향한 내집단(inner group) 결속이 배타주의와 획일주의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즉 타도해야 할 적을 목전에 두고 이견과 반대는 이적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두 전범국 독일과 일본의 나치즘과 군국주의 역시 결속의 이데올로기였다. 이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들이 구성원들에게 강요한 답은 결국 하나였다. "그래서 너는 누구의 편이냐?"
과거 엄혹한 시절의 군사독재 정권을 군사 파쇼라고 불렀다. 5·16쿠데타에서 5공화국까지 4반세기를 유전하며 제도화된 군부 권위주의 체제. 총력 안보의 기치 아래 대한민국은 거대한 병영국가로 개조되었다. 집권자에 대한 맹종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으니, 가부장제 유교 문화는 유용한 통치 수단이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 낭독의 일상을 통해 순종적인 국민이 육성되었다. 유신 체제는 군사 파쇼의 정점이자 진면목이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헌법이 부정되고 3권분립과 지방자치제가 무너졌다. 나아가 '한국적 민주주의' 미명 아래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고 언론과 반대 세력의 비판이 금기되었다. 그리고 종신 대통령이 일인 지배체제를 완성했다. 이러한 과정은 2차 세계대전 전야의 이탈리아를 방불케 하였다. 일 두체(Il Duce·수령)의 지위에 오른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 외에 모든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지방자치를 폐지하였다. 이어서 파쇼 행동대가 반대 세력들을 테러하며 전시 동원 체제를 구축했다. 그 당시 무솔리니가 뱉은 일갈은 이렇다. "파시즘은 신념 체계가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한국 정치에 21세기 정당 파시즘이 몰아치고 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는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국민 공약이자 자당의 제1호 혁신안이다. 궁박한 처지의 당대표가 몰염치하게도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하며 비루한 단식을 감내했다. 이어서 부역자들이 가결파를 해당 행위자로 공격하는 홍위병식 낙인찍기가 시작되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마치 정의가 승리한 것처럼 '수박' 의원을 색출하는 비이성의 활극이 확산되고 있다. 가령 국민응답센터라 불리는 민주당 권리당원 청원 사이트는 당대표에 대한 충성 맹세와 함께 가결파 의원 징계 요청으로 도배되는 중이다. 친명 일색의 진보 유튜버들은 가결파를 지명수배자 명단처럼 퍼 나르며 회색 테러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하류들과 마음을 맞추고 있는지 당대표는 말릴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혹시 이렇게 되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한국적 당내민주주의야!"
어느덧 공천의 계절이 다가왔나 보다. 부결파 공신들이 분주하게 친명 유튜브 채널에 기웃거리며 부산을 떤다. 게다가 수박 의원의 자객을 자처하는 공천 희망자들도 줄지어 출연하며 혹세무민에 여념이 없다. 오히려 당대표의 이율배반과 부역자들의 준동이 해당 행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이재명 지키기 선언'을 강요하거나 '가결파의 정치생명을 끊어 버리겠다'는 겁박을 일삼는 이 파쇼 행동대를 계도할 자정 능력이 민주당에 없다. 77.7% 지지로 선출된 숱한 범법의 의혹자를 결사 옹위하고 반대 세력을 내치는 것이 '민주당식 당내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숫자의 폭력이자 한국적 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요설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행태에서 국민의힘이 얻어야 할 교훈이 작지 않다. 그 위기의 전조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내 비주류를 대하는 옹졸함에서 포용을 찾을 수 없고, 야당에 대한 냉대에서 민생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기울어진 당정 관계에서 당당함을 찾을 수 없고, 당 운영에서는 성과를 찾을 수 없다. 더욱이 귀책사유자가 사면 복권과 동시에 어떻게 공천을 받을 수 있었는지 해명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상식과 도의를 찾을 수 없다. 민주화 이후 당내 이견 집단의 자율성과 포용력이 가장 낮다는 것이 오늘날 두 정당의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믿고 순종하며 싸우자!"는 결속 이데올로기의 폭력은 끝을 모른다. 그러나 이 단순한 슬로건이 파시즘 이탈리아를 전범의 주역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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