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의료가 ‘그들만의 리그’ 돼서야

입력 2023-10-17 17:08:47 수정 2023-10-17 19:34:16

송신용 서울지사장
송신용 서울지사장

#지난 4월 '메디시티' 대구의 도심 한가운데서 10대 외상 환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사인은 '응급실 뺑뺑이'. 구급차를 탈 때만 해도 의식이 있던 환자는 병원 4곳을 전전하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책임 소재 공방으로 번졌지만 근본적 원인을 들여다보면 지방 의료 공백 탓이 컸다.

#경북 의성의 70대 할머니는 6개월 넘게 서울의 대형 병원 근처 숙박업소를 떠돌고 있다. 80대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1차 의료기관에서 서울의 빅5 병원 입원을 권유했고, 후유증이 생기면서 간호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벼랑 끝 지방 의료 현실이 낳은 풍속도다.

정부의 의과대 정원 확대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여야가 증원에 초당적 목소리를 내는 건 다행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7일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의료계의 협조를 촉구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특히 민주당이 관련 입법을 위해 정부와의 대화 입장을 천명함에 따라 후속 작업이 급물살을 탈지 주목된다.

앞서 지난 5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의대 신설과 의대 정원 증원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역 의료 격차와 필수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지시해 달라는 요구다. 5개월 뒤 윤 대통령은 의대의 대폭 증원 입장을 밝혔고, 오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1천 명 선에서 늘리는 방안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정부·대통령실이 특정 사안을 놓고 공론의 장에서 얼굴을 맞대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의대 증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2006년 이후 정원이 3천58명으로 18년째 묶이면서 응급실 뺑뺑이 사고나 '소아과 오픈런'이 반복됐고, 지방 의료는 고사 직전으로 몰렸다. 2년 뒤엔 노인 인구가 20.6%로 늘어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데 의료진은 태부족이다. 상황을 방치하면 2035년 의사 2만7천여 명이 모자란다는 전망을 한 귀로 흘릴 일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 1천 명당 의사는 2.1명이다. 서울이 3.4명인 반면 경북은 1.3명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7명을 떠올리면 이 같은 비정상을 정상화하지 않고는 국민 건강권은 없다.

사실 의대 증원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증원이 이뤄지면 장기적으로 인재 재배치 효과가 나타나면서 의대 쏠림이라는 망국병 치료가 가능해진다.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의 과학고가 의대 징검다리로 존재하는 한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처지고 만다. 의대 증원에 대해 사회 전반의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만큼 직역 단체와 지방정부를 포함, 다양한 주체의 공론화 작업이 절실하다. 의사 단체의 반발부터 잠재우며 단기적 부작용을 극복할 묘안을 찾아야 한다.

이참에 포스텍의 연구중심의대 및 스마트병원 설립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첨단 공학 교육에 강점을 지닌 포스텍이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다면 지역 의료와 바이오산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기가 마련된다. 이미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 과제와 인수위 경북 지역 정책 과제에 들어갔고, 지난 2월 포스텍에 의과학대학원을 개원했다. 지역민의 숙원까지 반영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듯 의료 현안을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