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나의 삶을 누군가에게 말로 들려주거나 혹은 글로 써서 읽게 하는 행위도 스토리텔링이라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는 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맞는 이야기다. 한 인간의 삶은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기본적인 밑그림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연대기를 이야기로 만들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우선 모든 삶의 역사를 기억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나는 부분만 이야기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방대하여 이야기의 결말을 맺을 수 없다.
그 뿐인가? 우리의 삶은 일정한 목적성을 가지지도 않으며 인과관계의 고리 속에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인과의 아귀 딱 맞물리는 영화나 소설을 더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실직자가 복권에 당첨돼서 벼락부자가 되는 일도 생겨난다. 하지만 서사에서 '하루아침'에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밑바탕이 깔리지 않은 영화나 소설에 우리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쉽게 말하는 '막장'이 되는 것이다.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이야기와 같은 서사 장르에서는 치명적인 선고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혹은 나의 삶을 스토리텔링으로 창작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원칙은 바로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디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발상의 씨앗은 영감을 통해 얻어진다.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는 기억 하나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서 번쩍하고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 기억이 보존되고 전파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장대한 이야기도 대부분 그 욕구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또는 수백 번 이런 영감을 얻는다. 하지만 이런 영감은 허상에 불과하며 모래밭에 떨어져 있는 작은 씨앗과 같이 빨리 주워서 보관하지 않으면 곧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만들려는 사람은 언제나 그 영감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떠오르는 영감을 즉시 수집해 둬야한다. 통상 수필집의 경우 이런 식으로 만든 50여 개 정도의 메모가 각각의 글로 옮겨지게 되면 어지간한 책 한 권을 엮을 수 있게 된다.
영감은 허상이지만 메모는 실체다. 메모를 하고 나면 이 영감이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는 판별해 낼 수 있다. 내 삶의 이야기 창작을 위한 1차 검증이 마무리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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