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쿄코와 쿄지

입력 2023-10-12 10:41:40 수정 2023-10-13 14:52:42

한정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정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정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소설가 한정현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첫 소설집에 실리지 않았던 등단작을 포함해 총 10편의 소설이 서로 스치고 읽히면서 끝나지 않는 역사처럼 이어진다.

10편의 작품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공통의 역사를 지나 현재를 산다. 프롤로그 '아돌프와 알베르트의 언어'에서는 소수 언어 연구자인 아버지의 죽음 이후 방황하던 호주인 주인공은 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한국으로 왔지만 언어 연구가 아닌 어학원 강사가 된다. 그 과정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동생을 잃은 아내를 만나 정착하게 되고 언어의 장벽으로 대화가 많지 않았던 아내의 죽음 이후 아내가 바로 자신의 언어였음을 깨닫는다.

'쿄코와 쿄지'에서는 네 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예측하지 못한 삶으로 내던져진 이야기가 이들의 2세에게 전해진다. '리틀 시즌'에서는 그들의 2세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부모의 죽음 후 2세는 부모의 친구와 교류한다.

'지금부터는 우리의 입장'의 화자 '김강'은 자신을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코타르 증후군에 걸린 이모를 돌보고 있다. 이모는 대학시절 삼품백화점 1층 명품 매장에서 근무하던 언니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결국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이모는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하며 결국 생을 마감한다.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에는 어머님의 죽음 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성전환 수술을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전편 김강의 이모가 감정을 느낀 인물의 아들이다. 그의 전 여자친구인 '나'는 성전환 수술이 그와 이별한 이유지만 마찬가지로 그 수술이 그와 이별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책을 덮었을 땐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 속에 들어갔다 나온듯한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 이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닌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여전히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 속에 희생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이 그들과 반드시 연결돼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끝내 말해지지 못한, 역사 속 개인의 침묵을 비추는 투명한 응시다. 484쪽,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