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불과 3년 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은 2020년 7월 16일이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은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직과 피선거권을 잃어 대선 레이스에 나갈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대법원은 이 대표를 기사회생시켰다. 여당의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대선 후보직을 거머쥐고 대통령 당선의 문턱까지 갔다가 낙선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곧바로 국회에 진입, 거대 야당 대표가 돼서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공직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허위 사실을 공표해서 기소됐을 경우 이 판결 전까지는 엄격하게 처벌됐지만, '김명수' 대법원은 이 대표가 TV토론에서 거짓말을 한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해당 발언이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공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는 정의의 여신 '디케'상이 설치돼 있다. 디케는 한 손에 법전, 다른 손에 저울을 쥐고 있다. 원래 디케상은 눈을 가리고 양손에 칼을 쥐지만 대법원의 디케는 눈을 뜨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권순일 전 대법관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대장동 사건 주범 '김만배'가 권 전 대법관을 8차례 이상 만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관련 수사는 검찰이 청구한 권 전 대법관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발부하지 않음으로써 답보 상태다. 권 전 대법관은 퇴임 직후인 2020년 말 화천대유 고문으로 연봉 2억여 원을 받았다.
노골화된 사법부의 정치화는 이처럼 '법치주의'의 뿌리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하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재판은 기소된 지 3년 2개월이 지난 올 2월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600만 원이라는 1심 판결이 났다.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가 없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도 여전히 1심 재판으로 '하세월'이다.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범죄 혐의로는 유죄가 유력한 권력형 사건이지만 유례없는 재판 지연 사태로 사법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은 탓이다.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박 모 판사는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 6개월을 선고해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박 모 판사의 SNS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문제가 됐다.
민주당이 6일 '당론'으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사실상 이 대표의 재판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에 이어 35년 만에 벌어진 두 번째다. 대법원장의 부재는 후임 대법관 추천을 어렵게 하면서 재판 지연 사태를 심화시킬 수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이후 한숨 돌린 사법 리스크가 '재판 리스크'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대장동 특혜 개발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에 대해 이 대표가 기소된 것이 지난 2월이었다. 6일 속개된 재판은 8개월 만에 열린 이 사건에 대한 첫 공판 일정이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차기 대선 때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대표에게 다시 대선 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반전 카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법원이 부재하면서 모든 재판이 지연된다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과 기업이다.
이제 '디케'의 눈을 가려야 한다. 정치인과 권력자에게 무기력해지는 재판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君子報仇 十年不晩'(군자보구 십년불만)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복수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범죄 피의자가 태연자약 총선에 출마, 면죄부를 받고 임기를 다 마칠 때까지 처벌하지 못하면 '법치주의'가 실종된 나라다. 정치세력이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최악의 국정 농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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