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내리꽂기 공천은 이제 그만

입력 2023-10-08 18:57:31 수정 2023-10-08 19:45:27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김병구 동부지역본부장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내년 총선(4월 10일)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관성에 젖은 대구경북(TK) 여권 출마 예정자들은 내년 3월 이전에 공천이 마무리될 공산이 커 시간이 그만큼 더 급박한 셈이다.

TK 총선에서 시도민들에게 가장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것은 유권자를 돌아보지 않는 여당의 묻지 마 식 낙하산 공천과 존재감 없는 야당의 경쟁력이다. 내리꽂아도 무조건 당선시켜 줄 것이라는 여당의 오만한 공천 행태와 '그래도 우야겠노'라며 표를 준 뒤 실망하는 TK 다수 유권자들의 투표 형태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로 대변되는 TK 야권 교두보는 뒤를 잇는 뚜렷한 인물과 경쟁력을 보여 주지 못함으로써 확장은커녕 쪼그라드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 TK 총선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용산발' 낙하산식 공천 가능성이다. 윤석열 정부와 여권의 눈길이 TK 지역에 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전략공천지로 TK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윤 정부 입장에서는 여당이 다수당이 돼 국정 동력을 얻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과반 의석에 미달하더라도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은 물론 국회에 신뢰가 확실한 지지기반을 갖춰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TK 전략공천 유혹에 쉽사리 빠질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으로선 총선 승리 가능성이 희박한 호남권을 제외하고 수도권, 충청권 등지는 인물 경쟁력과 당선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지역의 전략공천은 극히 제한될 것으로 점쳐진다.

결국 전략공천은 서울 강남과 부산·울산·경남 일부를 제외하고는 TK 전반에 집중될 개연성이 높고, 이 자리엔 대통령실 참모진을 비롯한 윤 정부 측근들이 대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설사 여당 지도부가 이 지역에 경선을 표방하더라도 특정 유력 인사를 배제한 여론조사 경선 등을 밀어붙일 경우 이는 사실상 전략공천에 다름 아니다.

벌써부터 대구를 비롯해 포항, 구미, 경산 등 TK 지역에 출마설이 나도는 대통령실 참모진(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과 중앙부처 고위공직자 등이 10명에 육박할 정도다. 공직자 사퇴 시한(내년 1월 11일)을 감안할 때 출마를 겨냥한 대통실령과 중앙부처 인사들이 이달 말을 시작으로 올해 말과 내년 초 집중적으로 사퇴, 총선 공천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전략공천이 현실화할 때 공천에서 밀려난 현역 국회의원과 오랫동안 표밭 갈이를 해 온 지역 정치 지망생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밀어붙이기식 전략공천은 당내 이전투구와 함께 공천 탈락자들의 이합집산을 통한 기형적인 제3정치세력의 등장을 낳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여권은 특정 출신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 공정 경선이 공천 파행을 없애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정치권이 지역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선 3선 이상 중진 국회의원과 초·재선 국회의원의 적절한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TK는 총선 때마다 물갈이론과 전략공천의 핵심 대상지로 꼽히면서 파행 공천, 정치 리더십 부재, 지역 발전 퇴보라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TK가 또다시 용산(또는 행정부)발 낙하산 공천의 최대 전략지로 전락한다면 정치 발전은 물론 낙후된 지역의 발전과 도약을 기대하기는 요원해진다.

정부 여당은 새누리당이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진박 공천'의 파행으로 여소야대 정국으로 치달은 전례를 되새겨볼 것을 주문한다. TK가 더 이상 파행 공천의 볼모가 돼서는 곤란하다. 묻지 마 식 공천과 묻지 마 식 투표의 고리를 이젠 끊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