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교수(한국정부학회장)
1년 6개월에 걸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금리를 5%대로 인상했다. 5%대는 지난 20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준은 연말까지 금리를 0.25%포인트(p) 더 높이고, 2024년 5%대, 2025년 4%대를 유지할 것이라 한다. 심지어 2026년에도 금리가 3%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예고했다. 미국 금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내리지 못한다. 최소한 3년 동안 우리는 고금리(高金利)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왜 미국은 금리를 높이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금리가 높은데도 경제가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금리를 올리면 소비와 투자가 감소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물가가 하락한다고 되어 있다. 금리를 인상하는 목적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물가를 잡는 것이다. 물론, 경기 침체가 너무 심하면 금리를 높일 수 없다. 물가가 충분히 내려가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중립'(neutral) 금리를 2.5%로 추정한다. 금리가 2.5%를 넘으면 경기가 침체한다는 뜻이다. 5%대 금리가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되지만 실업률이 높지 않다. 실업률이 낮으니 연준이 금리를 높일 여지가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물가상승률 2%에 비해 2~3% 더 높다. 물가가 떨어지지 않으니 금리를 낮추지 못한다.
'고금리-고물가-저실업'은 경기가 호황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경제는 호황인가? 그렇지 않다. 팬데믹(pandemic) 이전부터 돈이 많이 풀렸고,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돈을 많이 썼다. 이렇게 풀린 돈이 물가를 끌어올렸다. 프리드먼(Friedman)의 말대로 물가는 언제나 화폐적인 현상이다. 수년 동안 풀린 돈을 회수하려면 '더 높은 금리를 더 길게'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경기 침체일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이들은 단기금리와 장기금리 차이에 주목한다. 경제가 정상적이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다. 만기(滿期)가 길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가 나쁠 것으로 예상되면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진다. 미국의 단기금리와 장기금리를 비교하면 뚜렷한 패턴(pattern)이 드러난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이미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았다. 팬데믹 기간 미국 정부가 돈을 많이 풀어서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아졌으나, 2022년 하반기부터 다시 금리가 역전됐다. 현재는 3개월 만기 금리가 10년 만기 금리보다 1%p 높다. 이 지표를 신뢰한다면 미국 경제는 1년 전부터 침체에 빠져 있다.
조금 더 낙관적인 예측이 있다. 블룸버그(Bloomberg)가 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년 이내에 미국 경제가 침체할 확률은 60%이다. 경제 '경착륙'(hard landing)에 관한 연구 결과도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 1년 이내에 GDP(국내총생산)가 1% 이상 감소하는 것을 경착륙이라고 한다. 연준이 금리를 높이면 시차(時差)를 두고 GDP가 감소한다. 1965~2019년 연준이 긴축 정책을 11번 썼는데 경착륙이 6번 있었다. 이 연구 결과가 맞는다면 내년에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확률은 54.5%이다. 50%보다 약간 높다. 경착륙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준도 아니다.
미국 물가상승률이 2%가 되거나 실업률이 상당히 높아져야 연준이 금리를 낮출 것이다. 문제는 물가가 떨어지기 전에 실업률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Krugman)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연준이 목표로 설정한 물가상승률 2%가 적절한가? 그는 3~4%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크루그먼의 말이 맞는다면 연준은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높은 금리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신용카드 연체율과 소매점 도난 사고율이 높아지고 있다. 현금이 바닥났다. 금리와 물가가 높으면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다. 경제적인 고통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분출(噴出)할 것이다. 이는 비단 미국에 국한(局限)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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