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북한, 투지를 가장한 비겁함

입력 2023-10-02 16:37:22 수정 2023-10-02 18:33:49

유니폼 당기고 거친 태클…스포츠 정신 내팽개친 北

지난 29일 여자농구 남북 대결이 벌어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 내 주차장 모습. 북한 선수단과 한국 선수단이 타고 온 버스가 나란히 주차돼 있어 대조를 이뤘다. 채정민 기자
지난 29일 여자농구 남북 대결이 벌어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 내 주차장 모습. 북한 선수단과 한국 선수단이 타고 온 버스가 나란히 주차돼 있어 대조를 이뤘다. 채정민 기자

북한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랜만에 오랜만에 국제 스포츠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혈맹이라는 중국이 항저우에서 여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하지만 의욕이 과한 탓인지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줘 비판을 받고 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탓인지 북한 선수단은 한국 취재기자들은 물론 한국 선수단과 마주쳐도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29일 남북대결을 펼친 여자농구 대표팀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 경기에서 이긴 뒤 강이슬은 "북한 선수들의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아 좀 속상했다"고 밝혔다.

직전 아시안게임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단일팀을 이뤄 나간 적이 있어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 듯했다. 당시 강이슬과 박지수, 박지현이 단일팀으로 나섰고 북한에선 정성심 감독과 로숙영, 김혜연이 함께했다.

민족의 명절 추석인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연습을 마친 한국 선수가 북한 정성심 감독과 북한 코칭스태프 앞을 지나며 목례를 하고 있다. 북한 정성심 감독은 직전 대회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여자농구에서 코치로 활약한 바 있다. 연합뉴스
민족의 명절 추석인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연습을 마친 한국 선수가 북한 정성심 감독과 북한 코칭스태프 앞을 지나며 목례를 하고 있다. 북한 정성심 감독은 직전 대회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여자농구에서 코치로 활약한 바 있다. 연합뉴스

강이슬은 길 가다 마주쳐도 북한 선수들이 피했다고 했다. 정성심 감독도 경기장에서 한국 선수들의 인사를 외면했다. 경기 중 상대가 넘어지면 먼저 일으켜주자고 동료들과 얘기할 정도였건만 북한 선수들이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아 조금 속상하고 아쉬웠다는 게 강이슬의 얘기였다.

외면할 수는 있다. 북한 선수단도 속사정이 있을 게다. 다른 나라, 특히 한국과 접촉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자극하고 위해를 가하는 건 다른 얘기다. 스포츠에선 동업자 정신이 중요하다. 경쟁은 치열해야 하지만 정정당당해야 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북한 선수단은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있다.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지소연에 대한 반칙 상황에서 양측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지소연에 대한 반칙 상황에서 양측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0일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북한과 남북 대결을 벌였다. 8강에서 북한과 만난 한국은 1대4로 패했다. 명백히 북한이 반칙을 범했음에도 심판의 휘슬이 불리지 않았고, 상대 골키퍼와 충돌한 손화연을 퇴장시킨 것도 과했다.

심판만 못났던 게 아니다. 북한 선수들은 거친 태클로 한국 선수들을 위협했다. 지소연에겐 두 발을 들어 태클을 거는 바람에 두 팀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니폼을 잡아당기는 건 다반사. 북한의 김충미는 플레이 도중 넘어진 심서연을 의도적으로 밟고 지나갔다. 그래도 경고는 주어지지 않았다.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후반 북한 리유일 감독이 대한민국 천가람과 북한 리명금의 볼 다툼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후반 북한 리유일 감독이 대한민국 천가람과 북한 리명금의 볼 다툼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엔 북한 남자축구 대표팀이 난동을 부렸다. 1일 8강전에서 일본에 1대2로 패한 뒤 주심에게 달려가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선수는 심판을 밀치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

경기 도중 이미 북한은 추태를 보였다. 경기가 잠시 중단된 상황에서 주심이 북한의 김유성에게 경고를 줬다. 김유성이 일본 스태프에게 물을 요구했는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스태프가 다른 이에게 물을 건네자 김유성이 주먹을 들어 위협을 가해서였다. 그러고도 태연히 물을 받아 마셨다. 또 경기 막판엔 거친 태클을 남발했다.

북한 남자축구 선수들이 1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 패배한 뒤 심판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남자축구 선수들이 1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 패배한 뒤 심판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대표팀은 북한에 패한 뒤에도 심판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현장에서 분풀이를 해봐야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고, 똑같이 저급한 취급을 받아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그걸 몰랐는지, 알고도 그랬는지 여자축구뿐 아니라 남자축구에서도 거친 플레이와 반응으로 일관했다. 일본전 패배 후 신용남 북한 남자축구 감독은 "몇몇 선수들이 조금 흥분한 건 사실이지만 주심이 공정하지 못했다. 이는 축구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N북한 남자축구 선수들이 1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 패배한 뒤 심판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N북한 남자축구 선수들이 1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 패배한 뒤 심판에게 달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심이 축구를 모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은 스포츠 자체를 모욕했다. '도를 넘는' 거친 플레이가 투지로 포장되선 안된다. 그건 투지가 아니라 몰상식이다. 스포츠 무대는 상대를 죽여야 끝나는 전쟁이 아니다. 비겁하고 배려 없는 행동을 투지로 미화해선 안된다.